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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3. 2021

육체는 훔치고 마음은 남겨두었다

토마스 하디,  정구성 :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거울을 들여다본다

              토마스 하디     


거울을 들여다본다.

주름진 피부를 보며 

말한다, ‘내 마음도 이리 

쭈그러들었으면!‘     


그러면 냉정해진 

마음 때문에 속상할 일 없이 

내 영원한 휴식을 홀로 기다릴 수 있을 텐데

평화로이.     


하지만 시간은 슬프게도 

육체는 훔치고 마음은 남겨두어서 

황혼 녘의 이 연약한 몸을 흔든다. 

한낮의 고동으로.       


I look into my glass

                by Thomas Hardy     


I look into my glass,

And view my wasting skin,

And say, ‘Would God it came to pass

My heart had shrunk as thin!’    


For then I, undistrest

By hearts grown cold to me,

Could lonely wait my endless rest

With equanimity.    


But Time, to make me grieve,

Part steals, lets part abide;

And shakes this fragile frame at eve

With throbbings of noontide.    


우리에게 ‘테스’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시입니다. 50대의 끝자락에 쓴 시로 알려졌으니 시인도 어느 정도는 나이 드는 것의 느낌을 알았을 것 같습니다. 상징이나 은유 없이 직설적으로 써 내려간 시이지만 어느새 인생의 황혼 녘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쓴웃음을 짓게 만들죠.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 그럴 수밖에요. 시간이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마음뿐인 것 같습니다. 아니 마음도 제법 주름이 졌지요. 아무리 새로이 결심을 해봐도 젊음의 무모함은 많이 잃어버렸을 테니까요. 요즘은 장수하시는 분들이 많고, 몸도 건강하게 유지하는 분들이 많으니 이제 초로(初老)에 접어든 처지에 함부로 나이를 탓하기도 민망합니다.     


하디의 시에서는 한 가지 표현이 좋았어요. ’ 시간이 육체는 훔치고, 마음은 남겨두었다.‘라는 구절 말입니다. 원문에서는 ’part’라는 표현을 써서 ‘일부’는 훔쳐가고 ‘일부’는 남겨두었다고 썼지만 다 아는 얘긴데 굳이...    


올 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분기가 끝나갑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네 등분하죠. 그래서 계절도 네 개고, 시도 네 행, 네 연이 많으며, 인생의 굽이도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가지로 나눕니다. 삶의 한 토막 한 토막을 돌아보면 치기도 많았고, 경솔함도 많았어요. 시간이 이렇듯 흐르는 것을 말로만 알았었죠. 하지만 아슬아슬 곡예하듯 넘어온 세월에 깨닫고 배운 것 또한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요즘 주변의 것들이 탐탁하지 않은 것도 많아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것 역시 시간의 장난질인 것을. 스스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죠. 그리고 한 굽이마다 또다시 깨닫고 후회하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념이 지나는 동안 다가온 또 하나의 시는 아동문학가 정구성의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이었습니다. 동심과 함께 시간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시였죠. 학창 시절 들었던 짐 크로치(Jim Croce)의 ‘병 속에 담은 시간‘(Time in a Bottle)이라는 곡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병에 담아둘 수 있으면 아껴둔 그것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아이의 맑고 순수한 소원에 지나간 시간마저 잊게 하는 시입니다. 시원한 시냇물 같고, 선선한 가을바람 같습니다. 어차피 담을 수 없는 시간이지만 아빠에게 주고 싶은 아이의 마음 때문에 흘러간 시간이 그리 서운하지 않습니다.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 있다면     

                        정구성


작은 병 속에 

시간을 담을 수만 있다면     


예쁜 병 속에 

한 시간만 담아서 

아빠 가방 속에 

살며시 넣어 드리고 싶다.     


아무리 바쁘신 아빠도 

그걸 꺼내 보시면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으시겠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 만들어 

아빠 가방 속에 몰래 

넣어 드리고 싶다.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by Chung, Ku-sung     


If I could save time 

In a little bottle,    


I’d like to put only one hour 

Into a pretty one

And softly let it

In daddy’s bag.     


However busy he is, 

Could daddy take it out 

And make himself at home for a while?      


I’d like to make 

Such an hour a day

And softly put it 

Into daddy’s 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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