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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었다고, 꽃이 졌다고

천양희, '너에게 쓴다'

by 최용훈

너에게 쓴다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I Write to you

by Chun, Yang-hee


I write to you that flowers bloom

I write to you that flowers fall.

My mind written to you

Has already been a path.

On my way, a pair of shoes have worn out.

I write to you that leaves spring forth

Where flowers fall

I write to you that birds sit

Where leaves fall off.

My mind written to you

Has already been a whole life.


하루하루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봄 되어 지천에 꽃 피면 함께 했던 봄날이 그리워 편지를 씁니다. 꽃이 진 그 자리는 얼마나 외로웠던 지요. 당신 없는 그 언덕을 홀로 오르며 얼마나 많은 눈물 흘렸는지요. 그리움 따라 흐르던 세월이 얼마나 야속했던 지요. 세월의 길 따라 흔들리던 내 마음을 전하고 또 전하니 이제 그 자리에 당신을 향한 길이 생겼습니다. 아 그 길은 왜 그리 먼지요. 가도 가도 당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신발이 다 닳도록 걷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또다시 편지를 씁니다. 꽃은 이미 지고 나뭇가지 잎으로 덮였건만 당신은 여전히 저 멀리에 계십니다. 잎조차 떨어지면 그 마른 가지에 새들이 와 앉습니다. 노래 잊은 새들처럼 내 마음 허황히 날갯짓합니다. 그렇게 그리움 당신께 보내건만 백발에 가린 내 청춘은 이미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온 삶,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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