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작가가 되려면 ‘자기만의 방’(A Room of Her Own)과 ‘경제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00년 전의 얘기다. 그녀는 16세기 말에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아마 셰익스피어가 여성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까지 했다. 21세기인 지금은 어떤가?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여성이 작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수모를 겪어야 할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만의 방으로 숨어든다. 그나마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다. 종이 대신에 어지러운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전등에는 갓이 없다. 은은한 불빛으로 눈의 피로에서 벗어날 필요도 없다. 아예 갓을 벗겨버린 모양이다. 오늘의 그녀는 컴퓨터의 불빛 위에 어린 활자라도 보이니 다행일 뿐이다. 잠든 이들이 깰까 봐 이따금 내뱉는 한숨조차 두렵다. 100년이 지났으니 이제 버지니아 울프처럼 당당하게 말하기도 뭐하다. 어쨌든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문재(文才)를 탓하기 이전에 왠지 송구스러운 마음부터 걷어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 깊은 밤 쓰고 또 지워도 그 여인은 무언가를 쓰고 있다.
허름한 연립주택 이층에 시인 가장(家長)이 산다. 맨 끝자리 집이라 겨울이면 외풍이 심하다. 두꺼운 패딩을 걸쳐도 손은 여전히 시리다. 오늘 쓴 이 시를 팔면 얼마를 받을까? 팔리기는 할까? 시심(詩心)은 가득한데 흰 종이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왜 가난한 시인이 되었을까? 서른을 넘겼을 때만 해도 가난의 고통쯤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봄철의 화려한 꽃들, 여름의 초록과 가을의 쓸쓸함, 그리고 겨울의 한기까지 모조리 내 열정 속에 가둬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긴 지금도 시인은 여전히 가난하다. 이제는 벽을 타고 들리는 바람 소리에도 처연해진다. 시심은 여전히 고개를 내밀고 재촉하는데 무엇을 써야 하나.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 해도 언제까지 시인으로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