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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5. 2021

시인은 무엇을 위해 쓰는가?

제인 허시필드, '시인' : 함민복, 긍정적인 밥  

시인

   제인 허시필드 (미국 시인, 1953~ )    


그녀는 지금 방에서 일하고 있다.

이 방과 다르지 않다.

내가 글을 쓰는 방, 당신이 글을 읽는 그 방과.

책상은 종이로 덮여있다.

램프의 불빛은

갓으로 가릴지 모른다.

전구의 일방적인 거북함이 사라지도록.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는 그 갓을 완전히 벗겨버렸다.

그녀의 시? 나는 결코 모를 거다.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일지라도.

그녀가 쓰고 있는 글자조차도

해독이 안 된다. 그녀의 의자 —

그것이 가죽, 헝겊, 비닐 또는 버들가지

그 무엇으로 만든 건지 상상해보라.

그녀로 하여금 의자와 갓 없는 램프와

책상을 갖게 하라. 그녀가 사랑하는 한 두 사람은

옆방에 있게 하자. 문은

닫아두어 잠자는 이들을 편하게 해 주어야지.

그녀에게 시간과 적막 그리고

충분한 종이를 주어 실수를 저지르며 계속하게 하라.                 


The Poet

         by Jane Hirshfield    


She is working now, in a room

not unlike this one,

the one where I write, or you read.

Her table is covered with paper.

The light of the lamp would be

tempered by a shade, where the bulb's

single harshness might dissolve,

but it is not, she has taken it off.

Her poems? I will never know them,

though they are the ones I most need.

Even the alphabet she writes in

I cannot decipher. Her chair --

Let us imagine whether it is leather

or canvas, vinyl or wicker. Let her

have a chair, her shadeless lamp,

the table. Let one or two she loves

be in the next room. Let the door

be closed, the sleeping ones healthy.

Let her have time, and silence,

enough paper to make mistakes and go on.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작가가 되려면 ‘자기만의 방’(A Room of Her Own)과 ‘경제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00년 전의 얘기다. 그녀는 16세기 말에 여성이 가사와 육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면 아마 셰익스피어가 여성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까지 했다. 21세기인 지금은 어떤가? 남성 중심의 문단에서 여성이 작가로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수모를 겪어야 할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만의 방으로 숨어든다. 그나마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다. 종이 대신에 어지러운 컴퓨터 스크린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전등에는 갓이 없다. 은은한 불빛으로 눈의 피로에서 벗어날 필요도 없다. 아예 갓을 벗겨버린 모양이다. 오늘의 그녀는 컴퓨터의 불빛 위에 어린 활자라도 보이니 다행일 뿐이다. 잠든 이들이 깰까 봐 이따금 내뱉는 한숨조차 두렵다. 100년이 지났으니 이제 버지니아 울프처럼 당당하게 말하기도 뭐하다. 어쨌든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문재(文才)를 탓하기 이전에 왠지 송구스러운 마음부터 걷어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 깊은 밤 쓰고 또 지워도 그 여인은 무언가를 쓰고 있다.    


허름한 연립주택 이층에 시인 가장(家長)이 산다. 맨 끝자리 집이라 겨울이면 외풍이 심하다. 두꺼운 패딩을 걸쳐도 손은 여전히 시리다. 오늘 쓴 이 시를 팔면 얼마를 받을까? 팔리기는 할까? 시심(詩心)은 가득한데 흰 종이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다. 왜 가난한 시인이 되었을까? 서른을 넘겼을 때만 해도 가난의 고통쯤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봄철의 화려한 꽃들, 여름의 초록과 가을의 쓸쓸함, 그리고 겨울의 한기까지 모조리 내 열정 속에 가둬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긴 지금도 시인은 여전히 가난하다. 이제는 벽을 타고 들리는 바람 소리에도 처연해진다. 시심은 여전히 고개를 내밀고 재촉하는데 무엇을 써야 하나.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 해도 언제까지 시인으로 살 수 있을까?           


긍정적인 밥                         

          함민복 (1962~  )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Positive Boiled Rice

            by Ham, Min-bok     


If a poem is bought for 30,000 won

It might be too cheap.

But, thinking of the rice the money can get,

I just see the boiled rice make my heart warm.       


If a book of poems is bought for 3,000 won

It might be too cheap for the poet’s labor.

But the money can get a dish of meat soup.

Can my poems warm the minds of people

As much as that steamy soup?

Never, they may be far from my wish.      


If a book of my poems is sold,

300 won comes to me as a reward.

It seems to be too narrow a margin

But it could pay for a bowl of coarse salt.

No reason to hurt my feeling

Like in the blu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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