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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5. 2021

커피 같은 인생

윌리엄 채닝, '교향곡'

사회적으로 성공한 제자들이 어느 날 은퇴한 옛 대학 은사를 찾아왔습니다. 서로 오랜만에 만난 그들 사이의 대화는 얼마 되지 않아 일과 생활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죠. 그들의 얘기를 듣던 노교수는 주방으로 가서 커다란 커피포트와 여러 가지 다양한 커피 잔들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도자기 풍의 귀한 커피 잔도 있었고, 플라스틱, 유리, 수정으로 만든 커피 잔도 있었습니다. 어떤 것은 아주 고가이거나 예술품 같이 아름답기도 했죠. 교수는 그들에게 아무 잔에나 커피를 따라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자신이 고른 잔에 커피를 따르자, 교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모두 좋은 커피 잔들을 들고 남은 것들은 싸구려뿐이구먼. 누구나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은 인지상정이야. 하지만 그것이 자네들의 삶에 문제와 스트레스를 만드는 것이야... 커피 잔이 커피의 맛을 더 낫게 해주는 것은 아니지. 조금 값이 비싼 것이 있지만 어차피 커피를 담기는 마찬가지야.”     


교수의 얘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자네들이 원한 것은 커피 잔이 아니라 커피였지. 하지만 모두 의식적으로 비싼 잔을 고르고 서로 어떤 잔을 선택했는지를 살피더구먼.”      


“커피를 우리의 인생이라고 치세. 그렇다면 직장, 집, 차, 사들인 물건, 돈과 지위는 커피 잔이나 마찬가지야. 어떤 잔을 고르느냐가 커피 맛을 결정하지 못하듯,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저 자신도 교직 생활을 통해 평생 그렇게 가르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물질적 곤궁함이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없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흔히 ‘만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술 한 잔, 담 배 한 대를 즐기는 것 마저 여의치 못하면서 만족하고 여유로울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맨 손으로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삶에 물질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내 삶을 담을 그릇은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남의 커피 잔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와 내가 마시는 커피는 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어떤 잔으로도 커피만 담을 수 있다면 삶은 당신의 것입니다. 침대에 누워 보는 천장의 크기는 어느 집에서도 같은 것이죠.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선택하여 아침을 시작하고 작은 만족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완전한 삶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말이 젊은 시절의 무모함과 경솔함, 성공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폄훼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결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저 역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더 좋은 것, 더 높은 것을 추구하는 젊음의 무지(無知)와 어리석음을 사랑할 테니까요.     


19세기 미국의 성직자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헨리 채닝(1810~1884)의 ‘교향곡’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교향곡

       윌리엄 헨리 채닝


적은 재산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것;

사치가 아닌 우아함, 유행이 아닌 세련됨을 구하는 것;

체면치레 않고 가치 있게 되는 것,

돈 많은 부자보다 마음이 부유하게 되는 것;

마음을 열고 별들과 새들, 아가들과 현명한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는 것;

열심히 공부하는 것;

조용히 생각하고, 솔직하게 행동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때를 기다리며 서두르지 않는 것;

한 마디로, 구속되지 않고 무의식적인 영혼이

평범함을 통해 성장하게 하는 것 – 이것이 나의 교향곡입니다.     


Symphony

           by William Henry Channing


To live content with small means;

to seek elegance rather than luxury,

and refinement rather than fashion;

to be worthy, not respectable,

and wealthy, not rich;

to listen to stars and birds, babes and sages, with open heart;

to study hard;

to think quietly, act frankly, talk gently, await occasions, hurry never;

in a word, to let the spiritual, unbidden and unconscious,

grow up through the common — this is my symph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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