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친구를 만들지만 진실한 우정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듯 돈은 입에 풀칠할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대저택의 적막한 거실보다는 작은 마루에 모여 앉은 가족들의 두런거림이, 이따금 들리는 웃음소리가 더욱 정겹습니다. 가진 것 빼앗길까 웅크리고 앉은 부자보다는 양동이에 찐 옥수수 나눠먹는 내 가난한 이웃이 더 아름답습니다. 가난해질 때까지는 즐거움이 없었다는 시인의 말에는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가난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고, 가난하지만 즐거운 것이죠. 거짓된 얼굴로 몰려드는 친구들을 그리워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먼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진실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이죠. 추운 겨울 찾아온 직장 잃은 친구와 따뜻한 국밥 한 그릇 같이 하고 차가운 친구 손에 만원 지폐 몇 장 쥐어주며 가슴 아파하는 가난한 사람이 더 아름답습니다.
양 주머니에 지폐를 가득 쑤셔 넣고 빼앗길까 안달하는 부자 어른은 불어서는 안 되는 트럼펫을 손에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믿을만한 어른은 없습니다. 그 상황이 무서워도 소리쳐 도움을 청할 용기마저 나지 않습니다. 아, 이제 깨닫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자유로움을, 그들의 아주 작은 즐거움을. 꼭대기에 오르면 내려올 것을 걱정하는 것이 이치인데, 낮은 곳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왜 올라갈 일을 걱정하겠습니까. 따뜻하고 진실한 친구들과 저녁놀 지는 산자락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에 갈증을 푸는 가난한 이들의 축제는 그 무엇보다 화려합니다.
이제 그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때의 아스라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부자들을 숭배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을 잃고 헤매는 모습에서 나 자신을 봅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집 한 채 얻을 수 없었다고 실의에 빠진 이웃의 슬픔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착하기만 한 자식들이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패배감에 사로잡힐까 안타까워하는 부모들의 얼굴에 어린 깊은 수심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아! 돈, 돈이 없어 슬픈 것이 돈이 많아 불행한 것보다 나은 것일까요? 홍수희 시인은 가난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넉넉한 마음은 시 속에서나 가능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