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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9. 2021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것

W. H. 데이비스, '돈, 오!',  홍수희, '가난으로 나는'

돈, 오!

      W. H. 데이비스      


오! 돈, 돈이 어도

나는 가난해질 때까지는 즐거움이 없었다.

친구라 하며 거짓된 많은 자들이

하루 종일 내 집 문을 두드렸다.      


그때 난 불어서는 안 될 트럼펫을 손에 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어른은 죽었으니까; 나는 감히 이 거짓된 세상에

그것을 알리고자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삶에 대해 무수히 생각했고 그리고 알았다.

가난한 자의 마음이 어떻게 늘 가벼울 수 있는지;

어떻게 그들의 아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하면서도 꿀벌처럼 윙윙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그렇게 가난한 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부유한 자들의 차갑게 찌푸린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부자들이 내려와야 하는 만큼

가난한 이들은 올라갈 필요가 없음을.     


오! 돈, 돈이 있었을 때

나의 많은 친구들은 모두 진실하지 못했다.

오! 이제 돈이 없으니

몇 안 되는 내 친구는 진짜였다.     


Money, O!    

        by  W. H. Davies    


When I had money, money, O!

I knew no joy till I went poor;

For many a false man as a friend

Came knocking all day at my door.    


Then felt I like a child that holds

A trumpet that he must not blow

Because a man is dead; I dared

Not speak to let this false world know.    


Much have I thought of life, and seen

How poor men's hearts are ever light;

And how their wives do hum like bees

About their work from morn till night.    


So, when I hear these poor ones laugh,

And see the rich ones coldly frown

Poor men, think I, need not go up

So much as rich men should come down.   


When I had money, money, O!

My many friends proved all untrue;

But now I have no money, O!

My friends are real, though very few.    


돈은 친구를 만들지만 진실한 우정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듯 돈은 입에 풀칠할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대저택의 적막한 거실보다는 작은 마루에 모여 앉은 가족들의 두런거림이, 이따금 들리는 웃음소리가 더욱 정겹습니다. 가진 것 빼앗길까 웅크리고 앉은 부자보다는 양동이에 찐 옥수수 나눠먹는 내 가난한 이웃이 더 아름답습니다. 가난해질 때까지는 즐거움이 없었다는 시인의 말에는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가난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고, 가난하지만 즐거운 것이죠. 거짓된 얼굴로 몰려드는 친구들을 그리워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먼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진실한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이죠. 추운 겨울 찾아온 직장 잃은 친구와 따뜻한 국밥 한 그릇 같이 하고 차가운 친구 손에 만원 지폐 몇 장 쥐어주며 가슴 아파하는 가난한 사람이 더 아름답습니다.     


양 주머니에 지폐를 가득 쑤셔 넣고 빼앗길까 안달하는 부자 어른은 불어서는 안 되는 트럼펫을 손에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 믿을만한 어른은 없습니다. 그 상황이 무서워도 소리쳐 도움을 청할 용기마저 나지 않습니다. 아, 이제 깨닫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자유로움을, 그들의 아주 작은 즐거움을. 꼭대기에 오르면 내려올 것을 걱정하는 것이 이치인데, 낮은 곳에서 행복한 사람들이 왜 올라갈 일을 걱정하겠습니까. 따뜻하고 진실한 친구들과 저녁놀 지는 산자락에 둘러앉아 막걸리 한 잔에 갈증을 푸는 가난한 이들의 축제는 그 무엇보다 화려합니다.     


이제 그런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때의 아스라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부자들을 숭배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을 잃고 헤매는 모습에서 나 자신을 봅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집 한 채 얻을 수 없었다고 실의에 빠진 이웃의 슬픔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착하기만 한 자식들이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패배감에 사로잡힐까 안타까워하는 부모들의 얼굴에 어린 깊은 수심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아! 돈, 돈이 없어 슬픈 것이 돈이 많아 불행한 것보다 나은 것일까요? 홍수희 시인은 가난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넉넉한 마음은 시 속에서나 가능할까요?


가난으로 나는

          홍수희    


가난으로 나는

당신을 얻겠습니다    


땅뙈기도 없는 새가

하늘을 다 누리듯이    


볼품없는 민들레가

햇볕을 다 누리듯이    


못생긴 물고기가

바다를 다 누리듯이    


나에게는 당신만이

주인이게 하겠습니다    


당신만 내 곁에

계셔주시면    


세상의 온갖 보배도

내 것이오니    


당신만 내게 있으면

내 가난함이 어찌

가난이겠습니까    


가난으로 나는

온 하늘의 별을

사겠습니다    


가난으로 나는

온 누리의 주인이

되겠습니다     


I, Being Poor...

           by Hong, Soo-hee    


With poverty

I will have you.    


As birds, without a patch of land,

Fly in the vast expanse of the sky,    


As plain dandelions

Enjoy every sunlight             


As ugly fishes

Swim through all the sea.    


I will only let you

Be my master.    


If only

You were with me,     


All the treasures in the world

Would be mine.     


If you were with me,

Poverty would be

No more poverty.     


With poverty,

I will get all the stars

In the sky.     


With poverty

I will be the master

Of the whol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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