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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02. 2021

신문과 신문지

김윤자, '신문'

신문 -죄 없이 포승(捕繩) 줄에 묶여가는 너를 보며

                                 김윤자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할 말을 다 하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온 세계를 다 알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뭇사람의 사랑을 다 받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미련 없이 생(生)을 접고 가는구나.     


하루만 살다 가는데도

아무런 원망도 없이 가는구나.         


Newspaper-Seeing you tied up by a rope without any fault

                                    by Kim, Yoon-ja    


Living only a day,

You speak out everything you want to.     


Living only a day,

You seem to know the whole world.     


Living only a day,

You are loved by so many people.     


Living only a day,

You give up your life without hesitation.     


Living only a day,

You leave without any grudge.      


언젠가부터 아침 내 머리맡에 신문이 없습니다. 사무실 탁자에 곶감처럼 겹쳐있던 신문들도 어느 순간 한 두 개 만이 놓이고, 읽히지도 못한 채 매일 다른 것으로 교체될 뿐입니다. 대신 하루 종일 켜놓은 책상 위의 컴퓨터 화면이 총 천연색으로 소식을 전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새로 산 신발 냄새가 좋았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본드 냄새였음을 알게 되었죠. 신발을 코에 대고 깊이 들이마시면 기분까지 좋아졌던 나는 환각제 애용자였던 모양입니다. 갓 배달된 신문 냄새는 그것만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면엔가 나오는 고바우 만화를 늘 뜻도 모른 채 찾아보곤 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영어공부한답시고 영자신문을 신청했습니다.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 타임스. 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죠. 보지도 않을 것을 돈 들여 신청해놓고 쓰레기만 늘려놓는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8면인가에 나오는 사설 하나를 읽은 날에는 세상 공부 것처럼 으스대곤 했답니다. 혼자서요.     


그랬던 신문이 점점 사라지고 있네요. 새벽이면 노끈에 묶여 보급소에 도착한 신문들이 배달부의 옆구리에 끼워져 골목길들을 달리곤 했죠. 요새도 그런가요? 하루만 지나면 신문은 신문지가 되지만 이래저래 쓸모가 많았었죠. 불쏘시개에 심지어는 화장지 대용이었으니까요. 이제 떠나야 할 연구실 집기를 정리하면서 깨지기 쉬운 것들을 신문지로 싸려 해도 어디 구할 때가 마땅치 않습니다. 한 때는 그것이 소식을 전하고, 지식을 쌓게 하고, 더 큰 세상을 궁금하게 했었는데 이젠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퇴물이 된 건가요? 아직도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그것에 대한 이전의 기대와 흥분은 이제 향수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내 모습이 날짜 지난 신문지 같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지났으니 자리를 비워야 하는데 미련이 남아 자꾸 뒤돌아보게 되네요. 내 모습 같은 신문지가 그래도 조금은 더 남아있길 바랍니다. 아직은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기를 기대하다가 멋쩍게 웃음 짓습니다. 그래도 한 때는 할 말 다하고, 세상 일 혼자 다 아는 듯 내세워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애정도 작지만 받아본 것도 같은데... 시인이 절 희롱하는 듯합니다. 웬 미련을 버리지 못하느냐고요. 하지만 원망은 없습니다. 아직도 포승줄에 묶인 죄인 같은 모습으로 누군가에게로 배달되는 종이 신문이 여전히 곁에 있다고 느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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