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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06. 2021

제국주의자의 처방전

진샤

제국주의자의 처방전     

                   진샤


제국을 사랑한 사내는

민주주의의 자만이 싫었다.     


사상은 종말의 절벽에서 낙하하였으나

제국은 과거의 대륙에서

오늘도 총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영광의 제국이

소설 속 신화로 갇혀버린 즈음,

공화국의 아침은

사내의 정시 출근을 위한 프로파간다를 펼친다.     


인류가 멸종시킨 사상은

역사에 박제되었고,

유일하게 진화한 이념은

영토와 의식을

게걸스럽게 확장해나간다.    


제국을 잃은 사내는

민주주의가 처방해준 자본을

힘없이 쥐어들었다.     


A Prescription from an Imperialist

                                   by Jinsha


The man who loved the Empire

Hated the arrogance of democracy.     


While a certain ideology fell down the cliff of its end,

The empire is still wielding its guns and swords

On the continent of the past.        


With the glorious empire

Locked by the myths in the novel,

The Republic’s morn saw its propaganda ever-intensifying

For the man being at work on time.     


With other ideologies destroyed by humans

And stuffed in history,

The remaining one has solely evolved

To ravenously expand

Its territory and consciousness.     


The man who has lost his empire

Feebly holds the capital

Prescribed by democracy.      


제국은 그 절대의 권력으로 평화를 유지합니다. 분쟁은 멈추고 반란의 조짐은 사라지죠. 그 잔혹한 힘 아래 모든 것은 침묵하고, 부동(不動)합니다. ‘팍스 로마나’가 그랬고, 오늘의 ‘팍스 아메리카노’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절대복종에 의한 저항의 종언(終焉) 일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과거의 사상과 이념은 한 시대의 유물인양 잠시 기승을 부리다 사라지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제국의 통치 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제국은 역사의 회랑을 지나 우리에게 다가온 현대라는 거대한 그림자입니다.     


제국의 영광은 승자의 광휘일 뿐이죠. 그것은 언제나 지배자와 피지배자, 갖은 자와 못 갖은 자로 나누어 과거와 현재, 미래의 긴 터널 속에 그들을 밀어 넣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과거의 제국을 그리워합니다. 그렇게 박제된 사상과 철학과 역사의 희미해진 추억의 그늘에 한동안 멍하니 서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속에 탐욕스럽게 자라난 자본의 제국에서 우리는 새로운 신을 만들고 그들을 추종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제국과, 과거의 대륙과, 신화 속에 갇힌 희망과 자유의 치유를 갈구하는지 모릅니다. 손에 움켜쥔 자본의 처방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동안, 우리는 잃어버린 제국을 찾아 방황합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현대의 제국에 복종하는 사내는 시간에 맞추어 어떤 회색 건물로 출근을 합니다. 말간 그의 얼굴이 전쟁터에 끌려 나온 어린 로마의 병사를 연상시킵니다.   


* 위의 시는 브런치에 '진샤'(오도독 시인)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시는 작가님의 시를 빌려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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