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ug 10. 2020

페리클레스: 시련과 미덕

셰익스피어 인문학: Pericles

  ‘페리클레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가장 다양한 인물과 장소와 사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질고 현명한 영주, 폭군, 헌신적인 부인, 사악한 왕비, 충성스러운 신하,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택하는 신사, 아름답고 착한 공주 등 그 어느 작품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섯 곳의 지리적 배경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구성도 매우 치밀하고 웅장하다.

  안티오크 왕국의 왕 안티오쿠스는 자신의 딸과 근친상관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딸에게 구혼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들에게 어려운 수수께끼를 던진다. 그리고 답을 하지 못한 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타이르의 영주 페리클레스는 그 수수께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답을 찾아낸 그는 그것이 아버지와 딸 사이의 불륜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그는 결국 40일 후 사형에 처해질 처지가 된다. 위기를 피해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영지로 달아나지만 안티오쿠스는 그를 죽이기 위해 자객을 보낸다. 

  페리클레스는 안티오쿠스가 어떤 형태로든 복수를 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안티오쿠스의 분노가 자신의 백성들을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충신 헬리카누스와 상의한 끝에 그는 타이르를 떠나 타르수스라는 나라로 향한다. 그 나라는 클레온 왕이 통치하는 나라였는데 심각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옥수수를 원조해 그 나라를 돕고 그곳에 머물지만, 얼마 있어 헬리카누스의 편지를 받고 귀국 길에 오른다.

  그러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페리클레스가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그는 표류 끝에 펜타폴리스라는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는 공주와 결혼할 전사를 선발하는 무도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낡은 갑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그곳의 왕 시모니데스의 눈에 들어 공주인 타이사와 결혼한다.      

  마침내 안티오크와 그의 딸이 천벌을 받아 불에 타 죽게 되자, 페리클레스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타이르 시민들은 그동안 그들을 이끌어온 헬리카누스가 영주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라지만 충성스러운 그는 페리클레스의 귀국을 기다린다. 마침내 페리클레스는 귀국을 위해 아내와 딸을 데리고 배에 오른다. 그러나 또 다시 거대한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 타이사는 항해 중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 선장은 시신을 바다에 던져 폭풍우를 멎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페리클레스는 하는 수 없이 이를 허락한다. 그녀의 시신은 파도에 쓸려 에페수스의 해안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세리몬이라는 의사에게 발견된다. 그는 타이사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알고, 그녀를 돌봐 목숨을 구한다.

  한편 페리클레스는 모진 고생 끝에 이전에 머물렀던 타르수스에 도착하게 되고 자신의 딸 마리나를 클레온 왕과 그의 왕비 디오니자에게 맡긴다. 타이르로 가는 길이 너무도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페리클레스는 타이르에 귀환하고, 앞서 에페수스의 해안으로 휩쓸려갔던 타이사는 세리몬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다이애나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가 된다. 그들의 딸 마리나도 타르수스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왕비 디오니자는 마리나의 영특함을 시기하였다. 비슷한 나이였던 자신의 딸이 마리나에게 가려 빛을 잃고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부하에게 마리나를 죽이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해적들이 그녀를 납치하여 레스보스의 미텔리느라는 곳에 창녀로 팔아넘긴다. 하지만 마리나는 자신의 정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사기 위해 매춘굴을 찾아오는 남자들에게 여성의 순결은 신성한 것임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녀는 귀족 집안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리고 젊은 귀족 리시마쿠스의 사랑을 받는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리나의 순결한 아름다움과 현명함에 끌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페리클레스는 클레온 왕에게 맡겼던 딸을 찾기 위해 타르수스를 방문한다. 하지만 마리나의 행방을 알지 못했던 클레온 왕과 그의 왕비는 마리나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페리클레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다시 타이르로 향한다.

  귀국 길에 페리클레스의 배가 마리나가 살고 있는 미텔리느에 정박한다. 하지만 그는 딸을 잃은 슬픔으로 3개월 동안 실어증 상태에 있었다. 이를 걱정한 헬리카누스는 그들을 마중 나온 리시마쿠스의 소개로 페리클레스의 실어증을 치료할 한 현명한 처녀를 소개 받는다. 그녀는 다름 아닌 페리클레스의 딸 마리나였다. 마리나는 페리클레스가 겪은 일들이 자신의 경험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페리클레스는 그녀의 출생과 이름을 묻고 그 처녀가 자신의 딸 마리나인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부녀는 눈물 속에서 다시 만난다. 딸과 재회한 페리클레스는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다이애나 여신을 만난다. 그녀는 그에게 에페수스에 있는 사원을 찾아가 그가 겪은 일을 이야기 하라고 말한다. 잠에서 깨어난 페리클레스는 마리나를 리시마쿠스에게 맡기고 다이애나가 말한 사원을 찾아간다. 그리고 사제가 되어있는 타이사 앞에서 자신의 지나온 날들을 얘기한다. 타이사는 그가 자신의 남편임을 알고 실신한다. 그리고 세리몬에 의해 그녀가 타이사임이 밝혀진다. 그렇게 헤어졌던 가족이 다시 재회한다. 

  극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폭군 안티오쿠스와 그의 딸은 이미 천벌을 받아 죽었고, 타르수스의 국민들은 클레온과 그의 왕비 디오니자의 죄를 알고는 궁전에 불을 질러 그들을 죽인다. 그렇게 악은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그 악행의 와중에서 우리는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충성스러운 헬리카누스, 자비로운 세리몬, 신분의 차이를 넘어 사랑을 지키는 리시마쿠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페리클레스’라는 극에서 표출하는 가치를 상징한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은 페리클레스 가족의 용기, 현명함, 인내 등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그 치밀한 구성, 신속한 전개, 정교한 성격묘사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수작으로 꼽힐 만하다. 특히 고전 연극의 삼 일치(Three Unities) 원칙을 탈피하고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연극이 고전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르네상스 연극의 틀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삼 일치란 시간, 장소, 구성의 일치로 한 편의 연극은 24 시간 내에,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구성에 있어서도 단 하나의 이야기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그리스-로마 연극의 규칙이다. ‘페리클레스’는 다양한 장소에서, 상당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특히 작은 이야기들을 주요 사건의 주변에 병렬적으로 배치시키는 소위 서브플롯(subplot)을 구사함으로써 고전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 당시의 새로운 극작 경향을 뚜렷이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도 고전적 극작 기법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다. 극의 결말 부분에서 다이애나 여신이 페리클레스의 꿈에 나타나 갈등 해소의 동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구성상의 복잡함을 신(God)의 등장으로 풀어내는 고대 그리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ex-machina)의 기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오마의 고전주의와 르네상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마치 알레고리의 수법을 이용하듯 등장인물들의 면면에 숭앙되어야 할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의 추구가 올바른 삶의 방향이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시적 정의를 구현하는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 ‘페리클레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우리가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들을 상징한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위대하며 얼마나 존중되어야 할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을 인정하고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놓았던 르네상스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페리클레스’에서는 가족애, 우정, 충성, 사랑 등 다양한 가치들이 열거되고 있다. 두드러지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다. 자신의 영토와 백성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왕국을 떠나는 페리클레스는 자기희생의 표본을 보여준다. 영주의 자리에 오를 기회를 포기하고 페리클레스에게 충성하는 헬리카누스는 의리와 헌신의 표상이고, 바다에 수장된 왕비 타이사를 구해 그녀를 다이애나 신전에 머물게 한 세리몬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 남편과 자식을 위해 오랜 시간 기도와 헌신을 다한 타이사 왕비는 절개와 모성을 상징한다. 또한 현명하고 아름답지만 노예로 전락한 마리나 공주를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한 리시마쿠스는 풍습과 세속의 편견을 깨는 개혁적 이상주의자라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페리클레스의 딸 마리나를 돌봤던 디오니자를 악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 디오니자는 페리클레스의 도움으로 기근의 위기를 극복한 타르수스 왕국의 왕비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그녀는 아름답고 현명한 마리나 때문에 자신의 딸이 상대적으로 빛을 잃는다는 것에 격분한다. 그녀는 분노에 사로잡혀 마리나를 살해하려 했고 그로인해 악인으로 규정되어 신의 처벌을 받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디오니자의 사악한 계략이 자식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사랑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페리클레스와 그의 부인 타이사 그리고 그들의 딸 마리나로 구성되는 강한 가족애가 작품의 중심이지만, 그 반대에 디오니자의 왜곡된 가족애가 존재한다. 자식에 대한, 가족에 대한 사랑도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선도 악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페리클레스의 딸 마리나는 이상화된 인간상의 전형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현명하며 무엇보다도 역경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지녔다. 비천한 신분으로 떨어졌을 때에도 그녀는 고귀함과 뛰어남을 잃지 않았다. 그녀의 지혜와 아름다움과 순수한 정직함이 결국 리시마쿠스의 사랑을 얻고, 가족을 되찾았으며 우리에게 선한 인간의 본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영토와 국민을 사랑했던 위대한 영주였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버리더라도 나라와 백성을 구하려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성은 가족에 대한 그의 뜨거운 가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것만을 위해 작은 것을 가벼이 여기는 행태는 겉으로 보는 것만큼 위대하지는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타이르의 영주 페리클레스는 안티오크의 폭군에게 위협을 받자 자신의 영토와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 영주로서의 안락을 버리고 타지로 떠난다. 그는 다가오는 위험 속에서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그것은 불안감이었다. 페리클레스의 입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겪는 불안의 실체에 공감한다.    

         무엇 때문일까?

         이 마음의 동요는. 

         슬프게도 늘 함께하는 멍청한 눈빛의 우울함이

         나의 익숙한 손님이 되고, 단 한 시도,

         찬란한 한 낮이나 슬픔조차 잠들어야 할 무덤 같은 

         고요한 밤에도, 맘 편한 때가 없으니. 

         즐거운 일들이 내 눈에 어른거려도 내 눈이 그것을 피하는구나. 

                                                   (페리클레스, 1막 2장)                

  페리클레스의 불안이 안티오크의 위협에서 오는 것이라면 현대의 근원적 불안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존재론적 불안감, 실존적 불안감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오늘날의 페리클레스들이 안식할 곳은 어디인가? 셰익스피어의 해답은 따뜻한 인간애와 헌신적인 사랑과 현명함으로 빛나는 고귀한 인간성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타고난 숙명적 외로움과 불안,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페리클레스의 딸 마리나는 천한 신분으로 전락해  시련을 겪지만 그녀의 고결함은 고통 속에서 빛을 발한다.     

         난

         난 순결한 처녀에요. 무정한 운명에 의해

         이런 더러운 곳에 빠지기는 했지만. 와서 보니

         이곳에선 독이 약보다 비싸게 팔리더군요. 

         오, 신들이 

         나를 이 불결한 곳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면,  

         난 가장 못난 새가 되어도 맑은 하늘을 날을 수 있을 텐데.

                                       (마리나, 4막 6장)        

  인용문에서 표현되듯 독이 약보다 더 중히 여겨지는 세상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못난 새가 되어도 창공을 나르리라고 말한다. 5막의 에필로그에서 가우어는 마리나를 예찬한다.     

         그녀는 불멸의 존재처럼 노래하고

         경탄할만한 그녀의 노래에 맞추어 여신처럼 춤춘다.

         학문에 있어서는 학자들을 무색케 하고; 자수바늘로는

         꽃봉오리, 새, 가지, 열매로 자연의 형상을 본 따며,

         그녀의 절묘한 솜씨는 장미와 자매가 되고, 

         그녀의 마사와 견사는 붉은 루비 같은 버찌와 쌍둥이가 된다.

                                                (가우어 5막, 에필로그)        

  아내와 자식을 잃고 오랜 고통과 번민에 빠져있던 페리클레스는 마리나를 만난 순간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헬리카누스를 향해 외친다.     

         오 헬리카누스 경, 나를 치시오.

         칼로 찌르시오. 내게 고통을 느끼게 해달란 말이요. 

         그러지 않으면 거대한 기쁨의 바다가 나를 덮치고,

         그 행복의 물결에 익사하고 말 것 같소. 

                                   (페리클레스, 5막 1장)    

  페리클레스의 불안과 번민과 시련의 고통은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던 마리나의 품성에 의해 기쁨과 행복의 파도에 휩싸인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음성을 듣는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순수하고 고결한 품성을 회복한다면 오늘의 페리클레스들도 불안과 번민 속에서 새로운 길과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거대한 운명의 힘에 마주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페리클레스’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지켜야 할 가치와 미덕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통해 그 가치와 미덕을 구현한다. 세리몬은 덕과 현명함을 강조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덕과 현명함은 무엇일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가치와 미덕은 무엇일까?     

         덕이나 현명함은

         작위나 부보다 더 큰 자산이요. 방탕한 자식으로

         작위는 더럽혀지고 부는 탕진되지만,

         덕과 지식은 불멸하고

         사람을 신과 같게 만들지.

                          (세리몬, 3막 2장)    

  운명을 넘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모습은 마리나의 다음과 같은 결심에서도 잘 드러난다.    

         불이 뜨겁고, 칼이 날카롭고, 바다가 깊은 한,

         나는 결코 처녀의 띠를 풀지 않겠어요.

         다이아나 여신님 저의 결심을 지켜주소서!

      (마리나 4막 2장)    

∎ 페리클레스는 수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은 뒤 자신의 지위와 영토를 되찾고 가족과도 만나게 된다. 삶의 궁극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얻어진 행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의 영지를 떠나 항해하던 페리클레스의 배는 폭풍을 만나 난파된다. 그는 하늘을 향해 간절히 애원한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고백한다.     

         성난 별들이여 이제 그만 분노를 거두어주오!

         바람이여, 비여, 천둥이여 기억 하소서, 땅위의 인간은

         그대들에게 굴복할 존재에 불과한 것을;

         나 역시 인간이니 그대들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아, 풍랑으로 암초에 부딪치고, 

         해안에서 해안으로 떠밀려, 이제 겨우 남은 숨으로

         다가올 죽음을 생각할 뿐. 

                                          (Act II, Scene 1)    

  행복은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이 내일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희망이 ‘페리클레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값진 교훈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에는 자로, 사랑의 정염과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