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 막연한 주제여서 생각은 피상적으로 머물다 이내 사라진다. 오히려 그 생각의 갈피는 학생들을 만나는 강의실에서 어설픈 모양을 갖추기도 한다. 직업이 문학 선생이니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언제나 공허하다. “여러분들은 왜 살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이나 기준은 있나?” 요즘 이런 질문을 던졌다가는 구식이라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답이 없는 추상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중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흐트러진 세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 길을 잃고 있다. 그동안 만들고 지켜온 많은 개념들이 해체되고 무너짐으로써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지탱해온 중심과 기준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 가치는 존재하는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정해진 기준은 과연 있는가. 오늘의 우리는 삶의 일관성을 믿지 않는다. 한 우물을 파라고 해서 수많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도 한 직장, 한 가지 일에 목을 매달고 살던 세대로서는 이해도 적응도 할 수 없는 다양성과 불연속성이 삶을 지배한다. 평생의 목적이 내 집 한 채 장만해서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던 부모들은 이제 고집스럽고, 우둔한 구세대로 내몰리고 있다. 청년실업 얘기에 자식들 걱정이 앞서면서도 아직 어린 자식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들은 노동개혁, 연금개혁 얘기에 좌불안석이다. 하지만 젊은 그들은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도 별로 불안한 것 같지 않다. 월세를 살면서도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그들을 보며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중년들은 부럽기까지 하다. 인생을 저렇게 살 수 있으면, 그래도 마음 편할 수 있다면... 중심이 없고, 기준이 상실된 세상에 질서가 있을 수 있는가. 기성세대에 대한 존경심이 무뎌지고, 인간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사라지고, 나의 기준만으로 남의 삶을 재단하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이 든 세대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새로운 세대들이야 말로 더욱 측은하다. 발판을 잃어버린 채 무중력 상태로 배회하다 보니 어디고 발 디뎌 도약할 곳이 없다. 뚜렷한 목표도 진보에 대한 믿음도, 사랑까지도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누구의 발자취를 쫒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말없이 자신들의 손놀림에 따라 변화하는 컴퓨터 자판에 몰입한다. “그러고 있으면 밥이 나와, 떡이 나와!” 빈정대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공허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어를 상실한다. 누구와도 얼굴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대화하지 않는다. 그저 카톡방에서 이어지는 실없는 이야기들에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다. 나의 일이 아닌데 편의점 알바에서, 식당의 서빙에서 무슨 보람을 느끼겠는가.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손님들에게 친절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중심을 잃은 세상을 떠돌며 그저 무의미한 행동을 계속할 뿐이다.
이 허망한 세상에서, 중심도 없고, 판단의 기준도 없고, 진보에 대한 희망도 없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포기의 세대’라 불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겪는 이 정신적 방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스스로 수없이 자문하면서 평생을 선생으로 살아온 나는 자책감에 고개를 떨군다. 하지만 이 시대도 이제 곧 과거의 시대가 될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앞 선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처럼 오늘의 젊은이들도 이 척박한 시대를 결국은 살아낼 것임을 믿는다. 젊은 그대들이여! 이제 길을 떠나라. 허공을 맴돌지 말고 두 발을 땅에 딛고 걸으라. 난해한 말들로 우리의 정신을 혼란시키는 저 위대한 철학들로부터 자유롭기를! 이제 현실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고단한 겨울을 이겨내 새 봄 새로운 싹을 틔우는 생명의 길을 찾아 나설 때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