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게 묻더군요. 왜 그리 목적 없이 글을 써대느냐고요. 사실 수 십 년간 교단에 섰던 제게 글을 쓰는 일은 그다지 낯선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몇 권의 책도 출간을 했고, 여기저기 단편적인 글들을 내놓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지난 일 년 반의 시간은 오로지 글 쓰는 일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무슨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각성이 생겨서도 아니었죠. 코로나 때문이었어요. 강의실에서의 수업이 불가능해지면서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2020년 첫 학기는 온라인 강의를 준비해 녹음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학기를 끝내고 방학을 맞이해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거리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청중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강의하던 저는 오랜만의 대화에 감격하고 있었죠. 하지만 10주로 예정되었던 강의는 코로나의 극성으로 7주 만에 끝을 맺게 되었고 나머지는 녹화를 통해 전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무료함이 이어졌습니다. 왠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누구를 자유스럽게 만나지 못했던 바깥 생활도 심드렁해졌죠.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제 눈에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가 들어왔습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무심히 컴퓨터의 화면을 켰죠. 아무 생각 없이 빈 화면을 바라보다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우리 시의 영역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시인들의 시를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영어로 옮겨보았습니다. 그저 그렇게 시작된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삼백 편의 시를 번역했을 때, 누군가 내게 말했습니다. 책으로 엮을 거냐고요. 과거에는 종이책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십 년 이십 년이 지니고 나면 그마저 변색된 페이지로 남을 뿐이더군요.
나는 인터넷에 글을 씁니다. 한 편 한 편이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간을 떠돌다 누군가에게 닿아 그것이 읽히고, 누군가로 하여금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큰 기쁨이고 보람이 될 것입니다. 글은 그렇게 보상이 되는 것이니까요. 출판사 없이 책을 내고 그것이 팔리는 대신 인터넷의 서고에 꽂혀 누구라도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가끔 무시당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것인들 그런 아픈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겁니다. 오랜 옛날 인쇄된 책을 받아 든 사람들은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돈 많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이 이제 자신들의 손안에 들어오게 된 순간이었죠. 그렇게 지식과 경험은 전달되고 공유되었습니다.
인터넷 플랫폼은 현대의 새로운 인쇄술입니다. 누구라도 쓰고 읽으며 함께 나누는 놀랍고 신비한 무형의 도서관이 되었죠. 이렇게 좋은 수단을 누구든 손쉽게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네요. 글도 영상도 이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즉각적으로 도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살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우주 공간에 전파를 쏘아댄다고 들었습니다. 꼭 그런 기분입니다. 만나서 얼굴을 보며 말하고 웃고 공감하는 즐거움만큼 미지의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기쁨이 결코 적지 않으니까요. 이제 인터넷이 인쇄소이고 출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화자가 되고 청자가 됩니다.
이 밤 여전히 저는 우주를 향해 전파를 쏘아댑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닿을 때 우린 그렇게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겠지요. 사랑하는 당신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