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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23. 2021

가랑비 처럼, 소나기 처럼

이정하, '비'

비 

       이 정 하     


그대 소나기 같은 사람이여, 

슬쩍 지나쳐놓고 다른 데 가 있으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몸은 흠뻑 젖었는데     


그대 가랑비 같은 사람이여, 

오지 않는 듯 다가와 모른 척하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 

이미 내 마음까지 젖어 있는데     


Rain

      Lee, jeong-ha


You, my love, like a shower,

Are already out there, just passing.

What should I do? 

I have been already drenched.     


You, my love, like a drizzle,

Secretly comes to me and pretends not to know me.

What should I do? 

My mind, too, has already been wet with sadness.     


짧고 강렬하게 쏟아 부은 소나기 같은 사랑의 약속이 이미 사라져버린 날, 당신은 젖어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어디까지 갔을까요? 코스모스 백화점에서 헤어진 당신의 뒤를 좇아 로열 호텔 문 앞에서 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당신은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 중앙극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겠지요. 비와 함께 흘렀던 눈물 속으로 우산도 없이 걸어가던 당신의 뒷모습에 쓰라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당신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렀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랑한다고 외쳤습니다.     


당신은 가랑비처럼 내게 왔죠. 가랑비 소곤거리는 그 밤, 광화문의 그 커피숍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지요. 창백하리만치 흰 당신의 얼굴이 담배 연기에 흐려질 때 나는 눈을 비비며 당신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단 한 번의 눈길로 사랑에 빠져 우린 그렇게 서울의 거리를 쏘다녔죠. 그리고 그 화창한 5월의 태양 아래에서 이별을 고했습니다. 아 어쩌란 말입니까? 당신의 숨결로 적셔놓은 이 그리움은 그칠 줄 모르는데 이제 나는 어쩌란 말입니까? 당신과 함께 걷던 그 길을 혼자 걷습니다. 세월의 흐름으로 슬픔의 흔적은 희미해졌지만 외로운 이 길은 어찌 그리 멀기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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