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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27. 2021

슬픔에 기대세요

류시화,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류시화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When Sorrow Calls You

                   by Ryu Si-hwa     


When sorrow calls you,

Turn around and look.

When you have nothing to turn to in the world

Lean on that sorrow

Like on the hill over there.    


When sorrow beckons you,

Walk toward it.

When you can’t find any meaning to rely on,

Go to the hill over there

And lean on yourself.

Count on that sorrow,

But never let it possess you.      


슬픔이 기댈 언덕이 된다면 기꺼이 그에게 기대야겠죠. 세상에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다면 슬픔인들 뭐 어떻겠습니까? 절망이 오기 전에 얼른 슬픔의 그림자에라도 숨어들어야겠습니다. 언덕 위 차가운 이슬에 등을 기대도 푸른 하늘 위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가슴 부풀었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슬픔마저도 따뜻한 것을. 그 슬픔과 함께 맞이하는 이 외로운 한가로움이 오히려 아름답습니다.     


저 멀리서 슬픔이 손짓을 하네요. 어서 그곳으로 가야겠습니다. 슬프기 위해서가 아니라 슬픔을 만나 위로라도 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찾지 못해 눈물짓는 슬픔에게 한 마디 해주어야겠습니다. 삶의 유랑에는 의미가 없다고. 그래서 슬픔마저도 슬픈 것이 아니라고. 이 세상 모든 감정들이 다 그러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어깨에, 등에, 삶의 짐을 지고 그저 걷는 것이라고. 그러니 어떤 것에게도 날 주어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나의 삶은 나의 것입니다. 슬픔을 즐기세요. 빠지지는 말고요. 메마른 세상에선 슬픔이 보내는 사랑마저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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