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If You Call Me
Shin, Seok-jeong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yellow ginkgo leaves
Blowing in the autumn wind.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a new moon
Silently crossing over a hill.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the water winding its way
Along the softly-loosened spring sky.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the early-spring sunlight permeating into the lawn
When a white heron sings in the blue sky.
우리는 언제나 길을 떠납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우리는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곳에 두고 먼 길을 홀로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겠지요.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보다는 덜 외로울 겁니다. 언제든 계절의 하늘 위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바람에 이는 가을 은행잎처럼, 언덕 위로 떠가는 초승달, 물 위에 비친 봄 하늘처럼, 그리고 잔디밭에 스며든 봄볕처럼 떠나고 싶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은밀하게 떠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나를 부르실 때에. 그날 백로가 푸른 하늘에서 노래해 준다면 떠나는 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