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May 26. 2021

아름다운 이별

신석정, '임께서 부르시면'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아란 하늘에 백로가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If You Call Me

          Shin, Seok-jeong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yellow ginkgo leaves

Blowing in the autumn wind.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a new moon

Silently crossing over a hill.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the water winding its way 

Along the softly-loosened spring sky.     


If you call me

I will be there

Like the early-spring sunlight permeating into the lawn

When a white heron sings in the blue sky.      


우리는 언제나 길을 떠납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우리는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계속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곳에 두고 먼 길을 홀로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겠지요. 떠나는 사람은 남겨진 사람들보다는 덜 외로울 겁니다. 언제든 계절의 하늘 위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바람에 이는 가을 은행잎처럼, 언덕 위로 떠가는 초승달, 물 위에 비친 봄 하늘처럼, 그리고 잔디밭에 스며든 봄볕처럼 떠나고 싶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은밀하게 떠나고 싶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나를 부르실 때에. 그날 백로가 푸른 하늘에서 노래해 준다면 떠나는 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의 충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