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 남편
남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물어보고 의논하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A Husband
by Moon, Jeong-hee
Neither a father nor a brother
Somewhere between them is the man.
If I were in love with someone else for sleepless nights
I’d like to talk to him first.
But, to think anything but this can happen
I turn around.
A man closest to and farthest from me.
Sometimes feeling a grudge against him,
I could never find a man
Who loves my children more than him
All around the world.
So I cook a meal again this evening for him.
Anyway he is the man with whom
I have had more meals together than anyone.
A man who has taught me the war most.
아버지와 오빠의 중간쯤 되는 사람. 남편은 그런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남편은 너무 좋은 사람 아닐까요? 아버지 같은 자애로움과 오빠의 사랑을 같이 지니고 있는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오죽하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잠 못 이룰 때에 제일 먼저 상의하고 싶은 사람일까요. 하지만 그건 아니다 싶어 돌아눕는 아내에게 등 뒤의 그 남자도 한 때는 그녀를 잠 못 들게 했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애증의 세월이 참 길었죠. 후회와 실망과 분노로 보낸 날들이 그렇게 많았어도 술 취해 들어온 그가 잠든 아이들의 이마에 입맞춤을 할 때면, 그와 함께 하는 것이 팔자구나 싶을 때가 있었겠죠. 그래서 아침이면 속 쓰릴 그를 위해 북엇국을 끓입니다. 아버지와 오빠에게도 갖지 못했던 애틋함으로 그 남자의 셔츠를 다립니다. 남편은 알까요? 그녀의 마음을. 그 요동치는 감정의 격랑을. 세월이 서로를 길들였나 봅니다. 이제 폭풍 같았던 극기의 세월을 지내고 뒤돌아보면 등지고 누운 그 사람이 가엽기도 합니다. 그 남자는 잠든 내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일까요. 그도 나와 같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