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ug 10. 2021

의자의 몰락

나호열: 타인의 슬픔

타인의 슬픔

          나호열     


문득 의자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으므로

제 풀에 주저앉았음이 틀림이 없다

견고했던 그 의자는 거듭된 눌림에도

고통의 내색을 보인 적이 없으나

스스로 몸과 마음을 결합했던 못을 뱉어내버린 것이다

이미 구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진 생각은 쓸모가 없다

다시 의자는 제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태어날 때도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슬픔을 너무 오래 배웠던 탓이다    


Others’ Sorrow 1

              Na, Ho-yeol    


Suddenly a chair collapsed. 

As no one sat there,

It must have broken down of itself. 

The chair, pressed on and on, 

Never showed its pain

But spit out the nails binding its body and mind. 

The ideas, already bent and blunt, are useless.

The chair can never rise up for itself. 

For, just like in its birth 

The chair have been taught others’ sorrow too long.   


갑자기 의자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조금 전에 누군가 그곳에 앉아있었는데 그가 떠난 후 의자는 이유 없이 주저앉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버텨내며 그곳에 있었던 의자는 언제나 굳건한 모습이었죠. 그랬던 의자가 너무도 나약하게 쓰러졌습니다. 그의 몸에 박혀있던 못이 빠져나가자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어요. 그 많은 기다림 속에서 언제나 누군가를 쉬게 했던,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을 받쳐주었던 의자의 몰락은 스러져 가는 모든 것의 환영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내고 텅 빈 허무로 남게 된 부서진 의자는 이제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죠. 우리 주변에, 삶 속에 모든 걸 바치고 무의미로 남게 되는 존재가 얼마나 많은지요. 한 때의 빛나던 이상도, 놀라운 발견과 창조도 언젠가 그를 받치던 못이 빠지면 그저 버려질 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상실하고 맙니다. 그리고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하죠. 하지만 그 부서진 의자에 걸터앉았던 모든 이들은 기억할 겁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슬픔을 털어내고 왔는지를. 남들이 일어선 그 자리에서 이제 의자는 쓰러집니다. 사방에 빠져나온 못과 나무 조각을 뿌리고 의자는 그들이 알려준 슬픔을 안고 퇴장합니다. 마치 인생처럼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도 나와 같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