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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25. 2021

소크라테스 행복론(1)

서양의 행복론은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행복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비관적이었습니다. 행복이란 드문 일이고 신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죠. 따라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자만으로 여겨졌고, 어떤 경우에는 혹독한 처벌에 직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행복의 요체가 육신에서 관심을 돌려 영혼을 향하는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욕망들을 조화시켜 마음을 평화롭게 하면, 마침내 신과도 같은 평정함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죠. 더불어 삶은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행복한 삶을 향할 수 있기 때문이죠. 소크라테스는 미덕, 정의, 궁극적인 존재의 의미 등과 함께 행복의 개념이 서양 철학의 선두에 놓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늘에서 떼어내어 지상에 내려놓았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은 주로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왜 세상은 존재하는가? 세상은 하나의 물질로 구성되는가 아니면 많은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는가?’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인가?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여도 왜 우리는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행복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미덕의 행위인가?’       


행복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세 개의 대화 속에서 드러납니다. 첫째는 에우튀데모스(Euthydemus)와의 대화:  알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을 남긴 것이 없지요. 그의 제자 플라톤이 그와의 대화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냅니다. 에우튀데모스와의 대화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 대화는 행복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서양 최초의 글입니다. 소크라테스는 2500년 전에 이미 오늘날까지도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죠. 그는 두 가지 중요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1)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모든 행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2) 행복은 외부적인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현명한 사람은 돈을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무지한 사람은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낭비를 일삼아 결국 이전보다도 못한 삶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돈 그 자체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돈은 조건적인 선(善) 일뿐이죠. 이는 모든 소유물이나 자질, 심지어 외모와 능력에도 적용됩니다. 잘 생긴 사람도 자신의 육체적 장점을 그릇되게 사용한다면 실속이 없거나 남을 속이는 인물이 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지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사악한 범죄자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바라고, 그것은 분명 다른 것들을 잘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야. 지식이 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다해 이를 준비해야 해. 가능한 한 현명해지는 것 말이야.”    


결국 행복은 우리 스스로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는 가에 달려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옳은 지식을 통해 현명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이야기는 플라톤의 대화 중 ‘잔치’(The Symposium)에 등장합니다.     


이 대화는 저녁 만찬 중에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사랑과 욕망의 신 에로스(Eros)를 찬양을 하면서 행복에 관한 주제가 제기되었어요. 의사였던 에리크시마쿠스(Eryximachus)는 에로스 신이야말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죠. 희곡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도 이에 동조하면서 에로스는 “인간을 도와주는 신으로... 에로스의 치유는 인류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했어요. 에리시크마쿠스는 에로스야말로 인간의 욕망을 포함해 모든 것에 생명을 주는 힘이므로 선(善)의 원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아리스토파네스는 에로스를 남과 여로 갈라진 인간을 다시 결합하는 힘이라 보았지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의 어두운 측면을 보았습니다. 에로스는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결코 완전히 만족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므로 에로스는 완전한 신이 아니었습니다. 신은 영원하고 스스로 완전해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스는 인간의 행복 추구에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왜냐면 그는 인간과 신 사이의 중개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로스는 육체적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시작되는 욕망의 힘이지만 마음의 더 높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 절제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옮겨가도록 교육될 수 있는 존재니까요. 렇게 되면 인간의 영혼은 완전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을 일종의 환희 혹은 어떤 깨달음의 현현(顯現, epiphany)이라고 묘사합니다. 그 순간 사람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비로소 인간 존재에 대한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죠.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인간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움의 핵심에 대한 비전을 얻게 될 때일 것이야. 일단 그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결코 금이나 의복 그리고 육체적 매력 따위에 유혹당하지 않을 테니까. 숨을 멈추게 할 것 같던 이전의 아름다운 것들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지...  진정한 아름다움을 식별하게 되면 우리는 가짜 미덕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미덕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야. 누군가 이렇듯 완벽한 미덕을 낳고 키울 수 있다면 그는 신의 친구라 불리게 될 거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이 신비한 환희 또는 현현이 주로 철학에 의해 얻어진다고 믿었던 반면 어떤 이들은 이 주제를 종교적, 미학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에 대한 순수한 비전을 가장 큰 행복으로 보고 있으며(토마스 아퀴나스), 어떤 이들은 음악이나 미술 속에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비전을 통해 절대적 환희에 이른다고 믿었습니다.(쇼펜하우어)  어떤 경우에든 이 진리, 아름다움, 신성에 대한 압도적인 경험은 우리의 삶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들을 의미 있고, 경험할만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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