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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25. 2021

소크라테스 행복론(2)

소크라테스의 행복에 대한 생각은 플라톤의 ‘국가’(The Republic)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사람이 불의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에우튀데모스와의 대화에서 말했듯, 소크라테스는 모든 인간이 행복을 원한다면 공정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는 a) 행복의 정의, b) 쾌락과 행복의 관계, c) 쾌락과 행복 그리고 미덕(도덕) 사이의 관계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육체의 건강''영혼의 공정성'비교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건강을 원하지요. 그 건강이란 신체의 모든 부분이 제각기 적절하게 기능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정성이란 영혼의 모든 요소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죠.  반면  소크라테스는 '불공정성' 영혼의 각 부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내전(內戰)’ 같은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한 사악한 요소가 이성(理性)에게서 지배력을 찬탈하는 반란인 것이었죠. 이와 대비해 공정한 영혼은 “정신적 조화”를 갖는 것입니다.  공정한 사람은 자신 앞에 무엇이 던져져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평화와 고요함을 유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외부적 쾌락에 경도되었던 재래적인 행복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행복은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조화로움으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둘째로 소크라테스는 쾌락에 대해 분석합니다. 그는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그렇지 못한 삶보다 더 큰 쾌락을 준다고 말합니다. 이는 공정한 삶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조화가 더 큰 내적 평화와 고요함을 준다는  다르지 않습니다. 도덕적이지  못한 삶이 초래하는 것은 내적인 불화와 죄책감, 스트레스와 근심 등 건강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할 더 큰 쾌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의 평화만이 아니고, 지식을 추구하는 흥분감 말입니다. 마음의 평화와 지혜를 추구하는 흥분감,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사람은 신과도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죠. 철학자는 이 추구의 정점에 있는 존재입니다. 무지의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더 높은 진리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 그 경험이야말로 모든 육체적 쾌락을 능가하는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주장은 소위 “쾌락의 상대성”입니다. 대부분의 쾌락은 전혀 진정한 쾌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이 사라짐으로 얻어질 뿐이죠. 예를 들어, 병에 걸렸다가 갑자기 회복되면 그것이야말로 즐거울 수밖에요. 하지만 그것은 병의 고통이 완화되었을 뿐이므로 그 즐거움은 사라지고, 그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뿐입니다. 우리의 쾌락이라는 것이 거의 모두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진짜 즐거움은 아닌 것이죠.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마약에 의존한 쾌락입니다. 이는 단기간에 최상의 쾌락을 주지만 필연적으로 그와 반대되는 고통의 상태로 이끌고 맙니다. 물리적 쾌락은 이렇듯 상대적이지만, 소크라테스 상대적이지 않은 쾌락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적 상대성에 묶이지 않는 더 높은 영혼의 쾌락입니다. 이것을 ‘철학적 쾌락’이라 부릅니다. 다시 말해 현실에 대한 더 큰 이해에 도달하는 순수한 쾌락 말입니다.     


수백 년 뒤, 에피쿠로스(Epikouros)라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육체적 쾌락이란 고통의 제거에 따른 것입니다. 목이 마를 때 물 한 잔으로 목마름을 해소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하지만 정신적 쾌락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 조화의 상태, 즉 고통을 없애기 위한 육체적 쾌락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태입니다. 육체적 쾌락은 계량화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는 것과 섹스 중 어디에 더 큰 쾌락을 느끼는가?’처럼 말입니다. 육체 쾌락은 그 결과에 있어 언제나 실망스럽기 마련입니다. 왜냐면 현재의 쾌락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더 높은 상태의 쾌락과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죠.    


반면 정신적인 쾌락은 계량화되지 않습니다. “지금 얼마나 배가 고파?”라는 식으로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피쿠로스의 결론은 결국 진정한 행복은 정신쾌락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욕망의 충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부처의 가르침과도 닮아있습니다. 부처는 욕망을 끊어냄으로써 열반에 들 수 있다고 말했지요. 현대의 작가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독일 작가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쾌락과 감정의 간섭이 없는 단순하고 고요한 상태”의 행복감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모든 인간은 당연히 행복을 원한다.

- 행복은 인간의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 행복은 외적인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 행복은 “욕망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간은 그 욕망을 조화시켜 그것으로 하여금

  물리적 쾌락에서 눈을 돌려 지식과 미덕을 향하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미덕(도덕)과 행복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결코 분리할 수 없다.

- 미덕과 지식을 추구하는 쾌락은 단지 동물적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얻는 쾌락보다 높은

  상태의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화'라고 정의합니다. 그것은 육체적 쾌락이 아닌 정신적 쾌락을 의미했습니다. 행복은 결국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이겠죠. 소크라테스는 육체적, 물질적  쾌락을 추구한 당대의 행복관에 도전했습니다. 그럼으로써 후대의 철학에 보다 근본적인 행복론의 토대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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