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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07. 2021

소크라테스-우리의 동시대인

2500년 전 소크라테스는 급진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며 기존의 믿음에 반하는 사상을 부르짖던 철학자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이 반역적 사상가의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의 겉모습을 따라 하기까지 했습니다. 긴 머리, 맨 발에 낡은 옷. 소크라테스 패션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되기도 하였죠. 그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군인, 창녀, 상인, 귀족들까지 온 도시를 매료시켰습니다.    

그는 무려 반세기에 걸쳐 아테네의 거리를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대의 빛나는 도시 아테네는 한순간 내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삶은 피폐했고 젊은이들은 시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죠. 그러자 한 때 그렇듯 영민했던 소크라테스의 사상, 그의 심오한 질문들과 그의 특이한 삶의 방식 모두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가에 의해 자살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배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요.       


아름다운 외모를 숭상하던 그 도시에서 소크라테스의 겉모습은 혐오스러웠습니다. 항아리처럼 솟아오른 배, 튀어나온 눈, 그리고 털이 숭숭한 손까지. 그런 그는 도시 한 복판의 장터에 나가 도발적으로 소리쳤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 없는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다가 몇 시간 씩 거리에 멈춰서 무언가를 응시했던 소크라테스. 우리는 왜 그 오래 전의 광인 사상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요?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가 인식한 문제들이 오늘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민중의 힘(demos kratia), 즉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내세워 치러진 전쟁을 겪었습니다. 스파르타에 대항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명분 없는” 싸움이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민주정치라는 새로운 사상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아테네 인들의 칼날 앞에서 강요된 전쟁에 나서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이념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의심을 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지요. “성벽과 전함과 번쩍이는 동상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들이 무슨 소용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추구를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도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흰 수염을 달고 비현실적인 사유에만 몰두하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이 느꼈던 대로 시끄럽고, 힘에 넘치며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역동적이었고 들창코였고 칼을 휘두르는 참전 용사였었죠. 다시 말해 그의 철학은 말 그대로 거리의, 대중의 철학이었습니다.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에 다르면 소크라테스는 인생 자체의 추상적 의미만을 찾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안에서 삶의 의미를 구하고자 했지요.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를 선하게 만드는 것은? 도덕이란 무엇이며 사랑은 무엇이고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은 어떻게 최선의 것이 될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의 그러한 질문들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세월을 격해 그는 이러한 질문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인간적, 개별적 만남보다 쓰여진 글이 더 큰 힘을 갖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아테네의 아고라는 그의 강의실이었죠. 그곳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크세노폰의 기록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거리에서 한 젊은이를 만나 묻습니다. “빵은 어디에 있는가?” 젊은이가 공손히 대답합니다. 그러자 “포도주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지?” 젊은이는 쉽게 그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다시 묻습니다. “선과 고귀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젊은이는 당황하여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죠. “나를 따라 거리에 나가서 배우게.”      


소크라테스는 또한 이렇게 주장합니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접촉은 일종의 정직함을 만들어내지만 글은 조작될 수가 있다. 특히 대중들에게 전달될 때에는.’ 이에 덧붙여 그는 이렇게 주장하죠. “언어가 마치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 대답은 언제나 하나뿐이야... 모든 낱말은... 잘못 다루어지고, 부당하게 공격을 당하게 되면 결국 그것을 쓴 사람에게 의존하여 보호받으려 한다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다음 세대들이 너무 컴퓨터 키보드에 의존하고, 문자 메시지에 시간을 보낸다고 걱정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상호 간의 따뜻한 접촉을 외면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것 보라고. 내가 그랬잖아. “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바이러스의 침범으로 오늘의 세계는 직접적인 소통의 채널을 더욱 상실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마도 현대를 사는 우리가 우리 주변의 세상에 대해 깊은 이해를 외면한 채, 외적인 사실에 집착하고, 피상적인 규칙에 매여 사는 모습에 분노할 것입니다.       


오늘날 TV에 중계되는 정치가들의 선거용 공약은 어떤가요? 소크라테스는 겉만 번드레한 말장난이나, 내용은 없이 소리만 큰 주장을 혐오했습니다. 진실이 없는 수사(修辭)는 “선한” 사회에 최대의 위협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TV 토론은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죠. 민주적인 아테네에서는 토론과 정치적 논쟁이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18세 이상의 모든 남성은 각자가 한 사람의 정치가였죠. 그들은 야외에서 벌어지는 토론회에서 주장을 펴고, 논쟁을 하고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만큼은 평범한 사람들이 국정을 이끌고 외교를 담당할 수도 있었던 거죠. 공적인 삶보다 개인적인 삶을 더 중시했던 사람들은 이디오테스(idiotes), 즉 바보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선 것이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거짓된 주장이 얼마나 사람들의 삶에 패악이 되는지를 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황금시대가 점차 쇠퇴하던 시기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지혜에 대한 그의 경외심,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던 그의 매력은 오히려 사회의 악처럼 비치게 되었습니다. 아테네 인들은 언론의 자유를 숭앙했지만 그들은 그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공격의 자유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인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몰락과 좌절감의 희생양이었습니다. 도시가 강력했을 때는 이 불편한 철학자를 용인할 수 있었죠. 하지만 적군에게 짓밟히고, 굶주림에 내몰리게 되자 민주주의 이념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자신 있는 사회는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취약할 때는 던져지는 그 질문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과연 현대가 직면한 그 수많은 질문에 자신 있게 맞설 수 있을까요? 인류의 몰락을 초래할 소통의 부재, 빈부의 격차, 환경의 파괴, 증오와 적개심 그 모든 질문에 직면할 용기가 과연 있을까요?        


소크라테스의 사후 그의 사상은 동서양의 문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11세기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그의 영향력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세계 7대 현인 혹은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지요. 그의 별칭인 ‘원천’(原泉, The Source)처럼 그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지식과 지혜의 샘물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사상가로 숭앙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모든 위대한 선인(先人)들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불확실하고 퇴락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소크라테스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모여든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유죄로 만든 것은 나의 범죄가 아니라 루머와 가십이었소. 당신들은 함께 속삭이며 내가 유죄라고 스스로를 설득한 것이지.”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Hesiod)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의 가십을 멀리하라. 소문은 사악한 것이니. 그것은 너무 가벼워 집어던질 수 있으나 들고 가기에는 무겁고 다시 누르기에는 힘들다. 일단 만들어진 소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미디어, 혹은 소문에 의한 심판은 끔찍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론의 왜곡이고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처럼 피해망상에 빠진 사회의 불확실성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우리는 “나 자신을 알고 ‘ ’ 정직하며 ‘ ’ 내가 옳다고 알게 된 것을 행하며 ‘ 무리의 증오심과 함성 뒤에 숨지 말고 어려워도 ”선한 “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절규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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