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에서 1066년은 영국의 문화와 예술의 측면에서 역사적 전기를 이루는 해였다. 북부 유럽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들이 영국 섬을 침공해 자신들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었던 5세기 초 이래 수 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고대 영국은 통일을 이룬다. 하지만 11세기 초 바이킹 족에 의해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한 프랑스의 침공을 받아 영국은 사실 상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고 프랑스로부터 언어, 교육,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받게 된다. 오늘날의 현대 영어가 모어(母語)라 할 수 있는 독일어보다도 어휘의 면에서 프랑스어에 가까운 이유이다. 1066년을 영국 역사에서는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영국 문학을 흔히 고대 영문학이라 부르고 있다. 서양사의 측면에서 보면 중세에 해당되는 시기이지만 영국 문학의 태동기를 의미하는 까닭이다.
이 시기에 영국인의 조상인 앵글로-색슨 족은 유럽에서 살았던 시절의 전설과 이야기들,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그들의 상상력과 결합해 자신들만의 문학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 시기는 근본적으로 구어(口語)의 문화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문자화 되어 글로 남겨진 것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당대의 작품들은 현대 영문학의 모태가 되었고, 특히 운문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한 고대 영시 중 가장 유명한 것들이 영웅시인 ‘비오울프’(Beowulf), 성서에 기초한 종교시 ‘십자가의 꿈’(Dream of the Rood), 그리고 바이킹과의 전쟁을 그린 ‘몰든의 전투’(The Battle of Maldon) 등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을 집대성한 10세기의 ‘엑서터 북’(Exeter Book)에는 ‘뱃사람’(The Seafarer), 방랑자(The Wanderer), ‘울프와 이드워서’(Wulf and Eadwacer) 등 90여 편의 난문(難文, riddles)과 40여 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엑서터 북은 201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러한 고대 영시들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현대 영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현대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판타지 문학의 대표작가인 J.R.R. 톨킨(J.R.R. Tolkien)을 비롯해 현대시의 선구자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W.H. 오든(W.H. Auden) 등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였다. 특히 비오울프는 여러 장르에서 많은 언어로 써진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다양한 문학이론과 세계관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문학이론 가운데 수용론(受容論, reception theory)은 1970년대 이래 문학비평에서 흔히 언급되었던 독자(讀者) 반응 비평론과 궤를 같이 한다. 예술 작품의 의미와 중요성이 작품 속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 독자와의 관계에서 파악된다는 이론이다. 독자, 관객, 청중들은 그들이 감상하는 시, 연극, 소설, 음악 등 예술작품을 그들의 문화적 배경, 삶의 경험에 따라 해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용론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여러 시대와 문화 속에 전달되고, 재창조되며 수용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오울프는 오늘날의 스웨덴 지역인 기츠(Geats)의 왕자이자 용맹한 전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비오울프는 괴물 그렌델(Grendel)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덴마크의 흐로쓰가(Hrothgar) 왕을 도와 괴물을 물리치고, 덴마크의 왕이 되어 오랜 세월 평화를 누리다가 노년에 이르러 화룡(火龍, fire dragon)과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영어로 써진 가장 오래된 이 서사시(epic)는 19세기 초 라틴어로 처음 번역되었다가 이후 6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한국어, 일어, 중국어, 인도의 텔루구어 등 아시아 권 국가들 독자들에게도 읽히게 되었다. 1995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아일랜드의 시인이자 번역가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도 베오울프를 번역하여 작품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많은 시인들이 비오울프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해 왔는데 특히 영국 작가 모린 더피(Maureen Duffy)는 비오울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화룡’의 시각에서 쓴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비오울프를 새롭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해석한 미국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의 소설 ‘죽은 자를 먹는 이들’(Eaters of the Dead)은 스페인의 배우 겸 영화감독인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가 주연한 ‘13번째 전사’(The Thirteenth Warrior)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선과 악의 대결을 주제로 한 비오울프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오늘날의 새로운 세대에게도 전달되고 있다. 만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진 만화책의 한 형태), 비디오 게임, 보드 게임, 미술과 음악(합창곡에서 오페라 현대의 록음악에 이르기까지) 등에서 비오울프의 이야기가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오울프라는 인물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방영된 미국의 판타지 드라마 ‘여 전사 제니’(Xena: Warrior Princess)와 미국의 영화감독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가 만든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등장한다. 이 영화에는 앤서니 홉킨스, 앤젤리나 졸리, 존 말코비치 등 유명 배우들이 더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비오울프와 같은 고대의 영시들이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 시들은 흥미롭고, 복잡하며 수수께끼처럼 난해하기도 하고 아름다움과 지혜, 때론 공포와 같은 감정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삶의 변화와 부침을 알려주기도 한다. 비오울프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내부와 외부의 부정적 힘들에 대한 우리의 투쟁이 궁극적으로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비오울프의 영향력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역동적이다. 그리고 그 수용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이 서사시는 단순히 한 편의 문학 원고가 아니고 현대의 수많은 예술작품 속에 공명되고 있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