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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8. 2021

해가 기울면 떠나야겠지요

김규동 : 해는 기울고

해는 기울고

        김규동


운명


기쁨도

슬픔도

가거라


폭풍이 몰아친다

오, 폭풍이 몰아친다

이 넋의 고요


인연


사랑이 식기 전에

가야 하는 것을


낙엽이 지면

찬 서리 내리는 것을


당부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The Sun is Sinking

               Kim, Dong-kyu


Destiny


Go,

Joy,

And sorrow.


Storms are coming.

O storms are coming.

This silence of Soul.


Connection


Before love cools

We have to go.


If leaves fall

We have a heavy frost.


Request


Go as far as you can.

If the road is blocked,

Sit and take a rest.


After some rest

You will see

The road.


해가 기울면 누구나 떠나야 합니다. 고된 삶의 뒤안길에는 기쁨도 슬픔도 남기지 말아야 합니다. 웃음도 눈물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돌이켜보니 참으로 험한 세월이었습니다. 사랑도 미움도 모두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제 몰아치던 폭풍이 지나고 모든 것이 사라진 고요만이 남습니다. 그것이 운명입니다.


인연이 멈춰도 떠나야 합니다. 한때 그토록 끈끈했던 당신과 나의 인연도 부는 세월의 바람에 티끌 되어 사라집니다. 서러워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과의 끈을 끊은 것이 나인지도 모르니까요. 언젠가 스치듯 만들어진 무수한 인연이 뿌연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면 이제 겨울 아침 찬 서리 맞으며 일어나야 하겠지요.


먼저 떠나온 사람이 아직도 먼 길이 남은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걸어가세요. 무더운 여름에도 바람 찬 가을에도 걸어가세요. 그렇게 걷다 보면 당신의 자리가 나올 겁니다. 가다가 너무 힘이 들면 쉬어가세요. 제법 지고 가는 삶의 짐이 무겁기도 하겠지요. 그러니 잠시 짐을 내려놓고 그저 쉬세요. 잠시라도 쉬다 보면 또다시 걸어가야 할 저만치의 길이 보일 겁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만나게 되겠지요. 그때 새로운 인연으로 다시 얼싸안고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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