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Nov 20. 2021

11월 위한 기도

이임영 : 11월의 기도

11월의 기도

                이임영


어디선가 도사리고 있던

황량한 가을바람이 몰아치며

모든 걸 다 거두어가는

11월에는 외롭지 않은 사람도

괜히 마음이 스산해지는 계절입니다


11월엔 누구도

절망감에 몸을 떨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가을 들녘이 황량해도

단지 가을걷이를 끝내고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수확물이 그득한 곳간을 단속하는

풍요로운 농부의 마음이게 하여 주십시오


낮엔 낙엽이 쌓이는 길마다

낭만이 가득하고

밤이면 사람들이 사는 창문마다

따뜻한 불이 켜지게 하시고

지난 계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랑의 대화 속에

평화로움만 넘치게 하여 주소서


유리창을 흔드는 바람이야

머나먼 전설 속 나라에서 불어와

창문을 노크하는 동화 인양 알게 하소서!


Prayer for November

               Lee, Im-young


In November

When the harsh autumn wind, lurking somewhere,

Sweeps everything away,

Any one who is not alone

Feels empty in mind.


In November

May anyone not be trembling in despair.

However bleak the autumn field is

Let us be rich in mind like farmers

Who return to his warm place,

Watching their bumper crops

After autumn harvest.


During the day let the trail drifted with fallen leaves

Be full of romance.

 Let every people’s window at night

Glow with warm light,

Let peace only flowing

In the dialogue of love

On the memory of the past season.


Let us think of

The window-shaking wind as a fairy tale

Knocking at the window from the distant land in a legend.


아주 오래전 누구의 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11월은 아무것도 없어서 ‘노-벰버’라 했다던 말이 떠오릅니다. 하긴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11월만큼 모호한 달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선 시월에는 보통 한가위의 풍요로움이 있고 뒤에 오는 십이월은 한 해를 마감하는 달이지요. 워낙 강력한 두 달 사이에 끼어서 그런지 11월은 그냥 흘려버리기 쉬운 달입니다. 혹시 11월에 태어나신 분들은 서운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11월의 탄생석은 ‘토파즈’이죠. 그 보석은 ‘우정, 인내, 결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해의 끄트머리를 지나며 고마웠던 친구를 생각하고, 열심히 참고 살아온 한 해를 추억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마지막 달을 기다리는 것이 11월 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억지같이 들리시나요? 하지만 11월은 왠지 지내온 긴 세월을 반추하는 제 모습 같아서 말입니다.


시인은 그런 11월을 위해 기도합니다. 황량하고 스산한 계절, 막연히 외로워지는 그 11월을 무작정 찬양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척박한 가운데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풍년을 맞은 농부의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에서 젊은 시절의 낭만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틋한  대화 속에 평화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고독한 사람의 창가에 불어대는 거친 늦가을의 바람조차 전설 속 나라에서 전하는 따뜻한 소식이길 바랍니다. 11월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잊기 쉬운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가 기울면 떠나야겠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