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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9. 2021

그림자의 기도

정연복 : 그림자의 기도

그림자의 기도

           정연복


빛은 빛의 일을 하고

저는 제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제게도

제 몫의 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님!


저도 빛같이

되도록 좋은 일을 하면 좋겠어요


근심의 그림자

불행의 그림자는 되고 싶지 않아요


사랑의 그림자

평화의 그림자가 되기를 소망해요.


주님!


이런 제 마음 이해하시죠?

제 기도 들어주실 거죠?



Prayer of a Shadow

                 Chung, Yeon-bok


The light does its work,

I do my work in life.


Thanks for giving me

My own share of work.


But, Lord!


I wish to do good things

Like the light.


I don’t want to be the shadow of anxiety,

The shadow of misfortune.


I wish I were the shadow of love,

The shadow of peace.


Lord!

Do you understand me?

Will you answer my prayer?


그림자는 빛처럼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신도 그림자로서의 일을 하고는 있지만 찬란한 빛의 일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기도합니다. 자신도 처럼 멋지고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지만 그림자 역시 너무나 좋은 일을 이미 하고 있지요. 나무의 그림자는 그늘을 만들어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줍니다. 달빛 아래 그림자는 외로운 나그네의 벗이 되어줍니다. 안방의 초롱 빛에 흔들리던 어머니의 그림자는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했던 지요. 하지만 그림자는 누군가의 근심이나 불행에 드리워지길 원치 않았지요.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사랑과 평화에만 생겨나는 그림자가 되기를 말이죠.


빛조차 언제나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농부의 등 뒤로 내려 쪼이는 햇빛은 온몸을 땀으로 젖게 합니다. 가뭄의 뜨거운 빛은 논밭을 갈라지게 하고 소중히 가꾼 농작물을 마르게 합니다. 그래서 그림자는 더욱 억울합니다. 성공의 빛, 행복의 빛, 자비의 빛이라 하면서 왜 그림자는 탐욕의 그림자, 증오의 그림자, 배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야 하는지 한탄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그림자도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림자님, 서러워 마세요. 빛없는 그림자가 없듯이 그림자 없는 빛도 없으니까요. 둘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니까요. 아마 하나님은 알고 계실 겁니다. 이미 그림자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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