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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l 18. 2020

셰익스피어의 희극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무성영화 시대 미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말이다. 삶의 양면성을 참 잘 규정한 말이다. 우린 우리의 삶을 너무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아닐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 추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더럽고, 불결한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는 해봐야 필요 없는 근심,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에 늘 노심초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그런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까. 돌이켜보면 우리가 불안해했던 많은 것들이 결국은 지나가 버리지 않았던가. 인생을 희극으로만 보아도 안 될 것이지만, 그 안에 몰입되어 굳이 비극의 시선으로만 볼 일도 아닌 것이다.     

  원래 희극은 비극에 비해 저열한 것으로 여겨졌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축제를 위한 희곡 경연대회에서는 이에 참가한 작가들에게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희극을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 비극을 중요시하고, 희극은 그저 일종의 막간극 정도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리지스트라타(Lysistrata)와 같은 작품은 현대에도 자주 공연되는 레퍼토리이기는 하지만 비극을 고상한 행위의 모방이라고 여겼던 고대 그리스에서 희극은 비극에 비해 가볍게 취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극을 나타내는 ‘tragedy'는 제사에 희생물로 사용된 ’tragos‘(염소)에서 유래되었고, 희극(comedy)은 ’ 잔치‘를 뜻하는 그리스어 'komos'에서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산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이었던 반인반수 새터(satyr)의 기행을 묘사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이 새터는 오늘날 풍자(satyr)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을 정의하면서 ’ 평균 이하의 사람들을 모방‘하는 것이라 말했다. 즉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조롱하며 즐겼던 것이 희극이라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희극을 가리켜 ’ 속되고 저열한 것의 가벼운 취급‘이라고 표현한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은 주로 외설적이고 속된 내용을 담고 있어서 ’ 음담 희극‘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가벼운 것을 보고 즐기는 가운데 사람들의 행복감이 높아지므로, 희극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극은 비극이 주는 숭고미를 그려낼 수 없었고, 새로운 깨달음이나 도덕적 질서의 회복을 이루어내는 것도 아니라는 이유로 비극에 비해 낮은 수준의 것으로 치부되었던 것이다.     

  희극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19세기나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웃음: 희극성의 의미에 관한 시론’이란 제목의 소책자가 그 시작이었다. 베르그송은 희극의 요체인 웃음의 본질을 규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희극은 비극처럼 연민이나 공포 등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지성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기계적 말투나 행동이 웃음을 유발하고, 웃음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한 사람의 웃음이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의 웃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가짜 웃음 트랙을 삽입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희극에 대한 경시에도 불구하고 놀이판이었던 연극에서 희극은 비극 못지않게 관객의 환호를 받아왔다. 셰익스피어가 쓴 37편의 희곡 가운데 희극이 비극이나 사극보다 많은 17편이나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극장에서는 귀족과 같은 상류계층이나 새로이 부상한 상인계급의 중산층, 그리고 소매치기나 창녀 등 천민계층의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있었고 이들 모두의 관심과 흥미에 부합하는 것은 단연 희극 공연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주로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사랑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행복한 결말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의 희극은 주로 낭만희극이라 불린다. 그리고 그 희극들은 사랑의 결과물인 결혼으로 끝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에 표현되는 남녀 간의 사랑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가 따른다. 완고한 아버지, 애인의 배신, 사랑의 훼방꾼 등 다양한 장애를 극복하고 이루어내는 남녀의 결합, 그것이 낭만희극의 요체이다. 그래서 낭만희극의 분위기는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인 경우가 많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요정의 숲이 무대가 되기도 하고, ‘12 야’의 배경이 되는 혼돈의 도시 일리리아가 되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논리나 인과관계를 초월한 사랑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절대적인 힘에 의해 사랑이 갑자기 상실되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기계 위에 앉은 신’이란 뜻의 이 기법은 연극 중 상황이 복잡해져 인과관계로 풀어나가기 힘들 때, 알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등장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 기법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에도 적용되어 연인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결국 해피엔딩의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결코 논리와 인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영역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 시대 희극의 또 다른 특성은 ‘의상전도의 희극’(transvestite comedies)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의 시대에는 여배우가 없었다. 그래서 여성의 역은 변성기 전의 미소년이 주로 맡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는 여성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의상전도란 주로 남장을 한 여성의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또는 안전을 위해 작품 속의 여성이 남자로 변장한다. 남자 배우가 하는 여성의 역할이 다시 변장에 의해 남성이 되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성 역할의 배우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관객들도 이미 알고 있으므로 극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성적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는 더 나아가 사회적 신분이나 계급의 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는 귀족이 천민이 되고 천민도 귀족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즉 무대 위에서 사회적 위계, 신분의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당시 상공업과 무역이 발전함에 따라 중산계층이 확산되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사회적 변화가 연극 무대를 통해 진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희극의 중요성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의 희극에서 여성은 물론 사회적 약자로 등장한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그 시대의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또한 남성들의 이기심과 편견에 의해 고통당하는 희생자들이었다. 하지만 희극 속의 여성들은 그러한 상황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인다. 남성들은 여전히 강자이고, 우월하고, 중요한 인간들이다. 하지만 이 순종적이고 나약한 여성들이 사랑의 궁극적인 완성을 이루어낸다. 그들은 현명하고, 자신의 사랑에 충실하며 기꺼이 희생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성들의 권리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크게 성장하였다. 21세기의 키워드로 여성성이 등장할 만큼 그들은 이제 남성에 못지않은 개인적,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여성들에게 불리한 사회구조가 제대로 변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성들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들의 가능성을 여실히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사회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각자의 장점을 살리며 조화하는 단계로 발전해 가야 한다고 믿는다. 셰익스피어 희극에 등장하는 그런 현명하고, 강직한 여성들이 현대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된다면 어떨까? 물론 이러한 생각은 남성들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남성들이 여성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정직하고 충실한 남성성을 보이게 될 때, 위대한 여성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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