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446~386 BC)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희극 작가였다. 그가 쓴 것으로 알려진 40편의 희극 가운데 현존하는 것은 11편이다. 희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의 작품은 그리스 작가 누구보다도 더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신랄한 풍자와 조롱은 종종 비방에 가까운 것으로 비난받기도 하였다.
구름(The Clouds)
스트레프시아데스는 빚을 갚지 못해 법적 조치에 직면하게 되자 밤잠을 설친다.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편히 잠들어 있는 그의 아들 페이디피데스를 보며 투덜거린다. 허영심 많은 그의 아내는 아들에게 비싼 승마 따위를 취미로 시키고 있었고, 그의 가정은 빚더미에 올라앉을 만큼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아들을 깨워 빚에서 벗어날 계획에 대해 말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계획에 공감하던 페이디피데스는 곧 마음을 바꾼다. 바보들이나 지적 게으름뱅이들을 위한 ‘싱커리’(Thinkery)라는 철학 학교에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계획은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을 유리하게 만드는 계책을 아들에게 가르쳐 법정에서 채권자들을 제압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페이디페데스가 아버지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자 결국 스트레프시아데스 자신이 그 학교에 입학한다.
싱커리에서 그는 학교의 교장인 소크라테스의 최신 발견들에 대해 듣게 된다. 예를 들어 벼룩이 한 번에 뛰어오르는 거리를 재는 새로운 측정 단위,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는 정확한 이유, 체육관 벽 못에 걸린 망토를 훔치기 위한 컴퍼스의 사용법 등이었다. 그것에 감동한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이러한 발견을 해낸 인물을 만나고 싶었다. 마침내 태양이나 기상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바구니 모양의 커다란 기구에서 소크라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구에서 내려와 스트레프시아데스에게 사상가와 지적 부랑자들의 수호신인 노래하는 구름들의 행렬에 참여하게 한다. 이 구름들은 극 속에서 코러스의 역할을 한다.
스트레프시아데스와 소크라테스
코러스 구름들은 이 작품이 작가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작가의 독창성과 더불어 과거에 용기있게 클레온 같은 힘 있는 정치가를 조롱했음을 찬양한다. 구름들은 관객들에게부패한 클레온을 처벌하고, 역법(曆法)을건드려 달과의 보조를 흐트러뜨린 자들을 응징한다면 신의 축복을 가져다 주리라 약속한다.
하지만 잠시 뒤 소크라테스가 무대로 돌아와 스트레프시아데스라는 이름의 이 늙은 학생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토로한다. 그리고 스트레프시아데스에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떠오르도록 해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그가 이불속에서 자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마침내 그의 교육을 포기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선언한다.
학교에서 쫓겨난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아들 페이디피데스를 강제로 싱커리에 등록하게 한다. 소크라테스의 두 조수인 ‘옮음’(Right)과 ‘그름’(Wrong)은 누가 페이디피데스의 교육을 맡을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옮음’은 규율과 엄격함으로 진지한 삶을 준비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름’은 말장난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나 직위가 높은 아테네 인들이 누리는 안락과 쾌락을 얻는 방법을 가르치겠노라 말한다. 결국 ‘옮음’이 패배하고 ‘그름’이 페이디피데스의 삶을 변화시킬 교육을 시작한다. 아들의 교육이 시작되자 스트레프시아데스는기대와 행복감 속에서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한번 코러스 구름들이 관객 앞에 나와 이 작품이 축제의 경연에서 일등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 대가로 적당한 비를 내려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폭우로 농작물을 파괴하고 지붕을 부수며 결혼식을 망쳐놓을 것이라 협박한다.
마침내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페이디피데스는 무능한 멍청이, 게으른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교묘한 말재주로 재정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법원의 소환을 받은 채권자 두 사람이 나타나자 자신감에 넘친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욕설을 퍼부우며 그들을 쫓아버린다. 하지만 잠시 후 무대로 돌아온 그는 관객을 향해 싱커리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자신을 구타하였다고 하소연 한다.
이어 등장한 페이디피데스는 냉정하고 거만한 태도로 부모를 구타할 수 있는 아들의 권리를 설파한다. 싱커리에서 배운 교묘한 말장난의 기술을 발휘했던 것이다. 스트레프시아데스는 아들에게 못된 교육을 시킨 싱커리와 소크라테스를 비난하며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학교를 공격하게 한다. 놀란 학생들이 무대 밖으로 쫓겨나가고 코러스 구름들도 조용히 자리를 떠나면서 막이 내린다.
* 이 작품은 게으르고 무능한 지식인들 특히 소크라테스와 같이 뜬구름 잡는 말장난으로 젊은이들의 정신을 망치고 있다고 여겨졌던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조롱한다. 플라톤은 이 작품이 소크라테스의 사형 선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고 있다.
리지스트라타(Lysistrata)
강인하고 책임감이 강한 아테네의 여인 리지스트라타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한히 지속되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을 끝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녀는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 여성대표자 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스파르타에서 온 람피토의 지지를 얻어 많은 여성들 앞에서 자신의 계획을 밝힌다. 그것은 전쟁을 끝내도록압박하기 위해 남성들이 갖고 있는 성적 특권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여성들은 그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정이 파탄되는 것에 좌절감을 느껴왔던 그들은 결국 선서를 하고 성행위 시의 체위를 포함해 모든 성적 쾌락을 포기하기로 약속한다. 동시에 리지스트라타의 다른 계획도 동의를 얻게 된다. 즉 아테네의 나이 든 여성들이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아크로폴리스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해 전쟁에 필요한 자금의 제공을 막는 것이었다. 여성들이 반역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고,남성들의 반격을 두려워한 여성들은 아크로폴리스의 문을 폐쇄하고 그 안에 은신하며 남성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거만한 남성 코러스가 등장하여 여성들이 아크로폴리스의 문을 열지 않으면 그 문을 태워버리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남성들이 준비를 끝내기 전에 여성 코러스가 물을 가득 채운 큰 통들을 가지고 도착한다. 상호 간의 주장과 협박이 오고 가지만 나이 든 여인들은 그들의 젊은 동지들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 그 과정에서 나이 든 남자들은 물에 흠뻑 젖고 만다.
아테네의 행정 장관은 여성들의 히스테리, 와인과 문란한 섹스, 이국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 대해 비난하며 그런 여성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남성들을 비웃는다. 또한 그는 전쟁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그의 부하들과 함께 아크로폴리스를 공격하려 하지만 사나운 여성들에 의해 곧 제압되고 만다.
리지스트라타는 싸움이 끝난 뒤 질서를 회복하고 아테네에서 행정장관을 만난다. 그녀는 남성들이 아내의 의견을 무시하고 전쟁에 나갈 때 여성들이 느껴야 하는 좌절감을 설명한다. 특히 한창나이에 남편을 전쟁에 보내고 독수공방 하는 여성들에게 동정을 표한다.
늙은 남성들과 여성 코러스 사이에 논쟁이 계속된다. 한편 리지스트라타는 몇몇 여성들이 벌써 섹스에 굶주리기 시작하고 집안일을 구실 삼아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는 소문을 듣는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번 여성 동지들을 규합하고, 규율을 회복한 뒤 아크로폴리스로 돌아가 남성들의 항복을 기다린다. 그러는 동안 미리네라는 여자의 남편 시네시아스가 섹스에 굶주린 채 등장한다. 하지만 미리네는 남편에게 여성들의 내세운 조건을 상기시키며, 침대와 오일을 준비하여 남편을 유혹하고 조롱한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 모습을 감춘다.
여인들의 코러스가 남성 코러스에게 휴전을 제안하자 두 코러스는 한데 모여 노래하고 춤춘다. 평화 회담이 시작되자 리지스트라타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대표자들을 ‘화해’ 또는 ‘평화’라 불리는 멋진 나체의 여인에게 안내한다. 그들은 그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리지스트라타는 남성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신랄하게 꾸짖는다. ‘화해’라는 여인의 벗은 몸과 섹스에 대한 간절함에 빠져있던 남성 대표들은 평화협정의 조건들에 대해 잠시 논의한 후 서둘러 의견을 조율하고는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그리스의 희극은 ‘외설 희극’이라 불릴 정도로 음담패설과 성적인 묘사로 유명하다. 당시의 성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반전, 평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