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네 개의 연극 축제, 시티 디오니시아(City Dionysia), 레나이아(Lenaia), 안테스테리아(Anthesteria), 루럴 디오니시아(Rural Dionysia) 등이ㅇ 매년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연극 경연이 처음으로 도입되고 약 한 세기가 지난 기원전 442년까지 극작가들의 작품은 단 한 곳, 시티 디오니시아에서만 공연되었다. 안테스테리아에 출품된 희곡들은 전혀 상연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5세기 후반부터는 레나이아나 루럴 디오니시아에서도 극이 공연되기 시작한다. 물론 이 시기에도 시티 디오니시아가 가장 권위 있는 축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들은 여러 신들을 찬양하는 축제의 일부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티 디오니시아(City Dionysia)
디오니소스 신이 아테네에 도래하는 것을 경축하는 시티 디오니시아는 매년 3월 말에 열려 며칠간 지속되었다. 이 축제는 그리스 세계 전체에 열려있었고 그리스의 부와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장 같은 곳이었다. 축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 참여 극작가는 자신의 배우들과 함께 극의 주제를 설명하도록 되어있었다. 예비 심사를 마친 뒤에는 관리들, 제작자들과 축제 참가자들이 신에게 바치는 봉물을 들고, 희생양으로 쓰일 동물들을 이끌고 행렬을 시작하는데 아테네의 대부분을 돌며 여러 신들의 제단 앞에서 춤을 추고, 마지막으로 디오니소스 제단 앞에서 황소를 희생으로 바침으로써 끝을 맺는다.
기원전 5세기 시티 디오니시아에서는 닷새 동안 여러 종류의 공연들이 열렸는데. 어떤 날, 어떤 공연이 있을 것인가는 늘 논란을 야기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사흘은 전적으로 연극에 할애되었고, 첫째 날에는 한 극작가의 비극 세 편과 새터극 한 편이 무대에 올랐다. 이는 그리스 비극이 3부작으로 구성된 주된 이유가 된다. 나머지 이틀은 주로 디티람브(Dithyramb: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고대 그리스의 찬가와 춤) 경연에 할당되는데, 하루는 성인 남성들로 구성되는 열 팀의 코러스에게, 다른 하루는 소년들로 이루어진 열 팀의 코러스에게 주어졌고 아티카*의 열 부족들이 각각 한 개의 코러스를 맡았다.
* 아티카: 아티케(Attike)라고도 함. 그리스의 지방명. 아테네를 중심으로 에레우시스, 마라톤, 프라우론, 수니온 등의 땅을 포함한다.
기원전 487년 이후에는 희극(comedy)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이 하루에 공연되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는 세 작품으로 축소되기도 하였다. 최근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5일간의 공연 기간 중에 매일 한 편의 희극이 무대에 올랐다고도 하지만 정확히 어떤 순서에 의해 이루어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기원전 449년까지는 오직 희곡에만 상이 주어졌지만 그 이후에는 배우들도 수상할 수 있게 되었다.
레나이아(Lenaia)
레나이아 축제는 아테네 종교장관(archon basileus)의 주재로 1월 말 경에 열렸다. 원래 레나이아는 루럴 디오니시아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아테네가 농촌의 성격을 잃고 난 뒤 그 날짜와 특성이 변화되었다고 한다. 1월에는 해상 교통이 안전하지 못했던 까닭에 레나이아는 주로 지역 축제였다. 따라서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었는데 레나이아는 아테네의 관리나 정치를 조롱했던 희극과 특히 관련이 있었다.
레나이아에서는 연극 활동이 기원전 442년까지는 공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점까지 희곡들이 비공식적으로는 공연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희곡들이 아테네의 주요 극장 중의 하나인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공연 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년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원래 레나이아는 다른 곳에서 열렸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 종파들과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에 대한 숭배도 여러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 나름대로 성소(聖所)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티 디오니시아가 숭배한 것은 디오니소스 엘레우테리오스(Dionysus Eleutherios)*였고, 디오니소스 극장은 이 신의 성소에 세워졌다. 한편 레나이아는 디오니소스 레나이오스(Dionysus Lenaios)*를 찬양하였고 그 성소는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다.
* 엘레우테리오스는 아폴로 신의 아들인 엘레우테에서 유래한 것으로 근심과 슬픔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디오니소스를 나타낸다. 한편 레나이오스는 포도주를 가리키는 말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가리킨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원래 공연은 큰 장터를 가리키는 ‘아고라’(agora)에서 이루어졌으며 레나이아에서 나온 희곡들은 그곳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몇몇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442년 희곡이 공식적으로 허가될 때까지는 아고라에서 공연되었을 것이고 그 이후 연극은 디오니소스 극장으로 이전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레나이아에서의 경연은 처음에 단지 희극(comedy) 작가나 배우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기원전 432년 비극 작가나 배우들에 대한 경연이 추가되었다. 시티 디오니시아에서는 매년 다섯 명의 희극 작가들이 경쟁했지만(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를 제외하고), 레나이아에서는 두 명의 비극 작가들(각자 두 편씩)만이 참가하였다. 새터극과 디티람브는 공연되지 않았다.
루럴 디오니시아(Rural Dionysia)
루럴 디오니시아는 모든 지역에서 반드시 같은 날짜는 아니었지만 매년 12월에 열렸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커다란 남근상(男根像)을 막대에 꿰어 높이 든 채 행진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태양이 가장 약한 시점에 생식력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연극 공연이 언제 이 축제의 일부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아티카의 100여 개가 넘는 시구(市區) 전체가 축제에 연극을 포함시켰을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레나이아에서 연극이 인정되기 전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연극 공연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5세기 말 이전에 상당수의 아티카 시구들에서 희곡이 공연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관습은 기원전 4세기 동안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427~347 BC)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살던 시대에 여러 지역에서 여러 날 동안 루럴 디오니시아가 열렸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유랑 극단들이 만든 공연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연극 공연이 가장 활발했던 시구는 피라에우스(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적어도 한 편은 공연된 곳), 이카리아, 살라미스, 엘레우시스 등이었다. 지방 시구들 중 많은 곳들이 그들의 전용 극장을 건설하였다.
루럴 디오시아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기원전 4 세기 이후에 관한 것이었다. 그 무렵 배우들은 다른 곳에서 공연된 작품들을 재공연 하였지만 5세기에 써진 이 희곡들의 원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루럴 디오니시아는 일종의 연습용 극장의 역할을 했으며 시티 디오니시아나 레나이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희곡의 배출구였고 혹은 도시에서 이미 공연된 작품들이 다시 무대에 올려진 곳이기도 했다. 루럴 디오니시아가 그리스 연극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그 활동은 연극에 대한 그리스 대중들의 관심이 얼마나 컸으며 연극이 단지 아테네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