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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Feb 01. 2022

로마 연극의 성립

로마 연극-1 

기원전 753년 로마는 북부의 에투루리아 인들이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기원전 509년 에트루리아의 지배자가 축출되고 로마는 아테네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듯이 공화국이 되었다. 기원전 4세기 로마는 지속적으로 팽창했고, 기원전 265년에는 이태리 반도 전체를 지배하였다. 이후 시실리와 그리스의 여러 지역들을 흡수한다.  


기원전 240년 무렵 로마의 연극은 그리스의 그것과 유사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극을 번역하여 들여왔기 때문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연극 공연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기원전 4세기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알려진 대부분의 초기 극들은 그 후 200-300년 뒤에 공연된 것들로 이는 고대 로마 연극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기 연극은 사회에 대한 논평의 역할을 하면서 로마인들의 삶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플라우투스(Plautus)와 테렌티우스(Terence) 등 로마의 대표적 희곡작가들은 연극을 뛰어넘어 로마의 교육과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그 작품들은 대단히 우수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공화국이 설립되고 100여 년이 지난 기원전 399년 로마인들은 렉티스테르니움(Lectisternium)이라 불리던 종교적 제의들을 시작하였다. 이것들이 곧 연극은 아니었지만 극의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게 된다. 기원전 364년 로마에 역병이 번지자 로마인들은 신들에게 바쳐진 제사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고 렉티스테르니움에 연극적 유희와 춤들을 가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제의의 일부로 혹은 독자적인 공연으로 발전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시기 짧은 텍스트 형식의 대본들이 사용되었고, 음악과 안무 또한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것은 로마의 신들을 기쁘게 하려는 노력의 일부이기도 하였다.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

기원전 3세기 무렵 전문적인 희곡들이 로마의 공휴일에 공연되었다. 이 공휴일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직장도 학교도 쉬는 날이었을 뿐 아니라 로마의 신들을 위한 대규모의 축제와 의식이 벌어지는 날이기도 하였다. 기원전 240년에는 로마의 유명 작가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Livius Andronicus)가 그리스 희곡을 번역해 로마 전역에서 공연함으로써 연극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이루었다. 같은 무렵 이태리 밖의 다양한 영향들이 로마의 문화를 성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안드로니쿠스가 로마의 관객들을 위해 그리스 희곡들을 번역한 이후 한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공연들은 대부분 그리스 희곡을 각색한 것들이었다. 이것들은 전형적으로 문학적이었고, 이후 로마의 작가들로 하여금 번역이나 각색이 아닌 그들만의 창작극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로마와 아테네의 관계는 비교적 우호적이었지만 로마에 미친 그리스의 영향은 주로 전쟁을 통한 간접적인 것이었다. 로마가 점점 성장하여 이태리뿐 아니라 지중해 전 지역에 걸쳐 전쟁을 수행하게 되자, 로마의 군대는 이전에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왔던 여러 지역들을 점령한다. 그리고 그곳의 문화를 로마로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의 로마에 대한 영향은 단지 문학과 연극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로마는 건축과 과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로마 공화국과 이후의 로마 제국은 그 거대한 영토 전역에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문화의 상당 부분은 고대 그리스에서 이어받거나 차용헌 것이었다. 


그리스극의 영향이 로마의 공연에 크게 퍼져있는 가운데, 기원전 100년경에 이르자 로마 본연의 희곡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들은 극이나 스토리텔링보다는 오락적 요소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것들은 오늘날의 서커스에 가까웠다. 로마의 시민들은 거대한 스펙터클을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마임(mime)과 더불어 노래와 춤이 공연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로마 연극의 독특한 정체성은 희곡의 장르들과 그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뚜렷한 성격에서 기인한다. 안드로니쿠스는 그리스극의 번역, 각색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로마 문학과 희곡으로 인식되는 작품들을 쓰기도 하였다. 그의 동시대 작가였던 그나이우스 나에비우스(Gnaeus Naevius) 역시 극의 대본을 썼는데 아쉽게도 두 작가의 작품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 기원전 200년 무렵 공휴일이 아닌 날에도 전문적인 극들이 공연되었다. 심지어 희곡작가들의 길드가 형성될 만큼 활발하게 창작이 이루어졌다. 그리스의 영향이 결정적이기는 하였지만 로마의 연극은 마침내 그것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로마에서 공연된 초기의 희곡들은 이태리 밖에서 가져온 사상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몇 가지 대중들이 즐겼던 초기 공연들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1. 아텔라 소극(笑劇, Atellan Farces) 


이 공연들은 인종적, 지역적 유머로서 오늘날 나폴리와 바리 사이에 위치한 아텔라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아텔라의 시민들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들로 여겨졌고 로마인들은 그들을 비웃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이 소극들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로마의 여행객이나 남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아텔라를 지나며 겪은 경험을 과장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2. 필락스 희곡(Phylax plays) 


이 희곡들은 ‘우스꽝스러운 비극’(Hilarotragedies)이라 불리는데 유머와 비극을 결합한 벌레스크(burlesque: 연극·문학에서 진지한 주제를 익살스럽게 꾸미는 수법) 스타일의 대본이었다. 이러한 형태의 희곡이 첫 공연된 곳이 그리스인지 로마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리스에서 탄생한 이 형식이 남부 이태리를 통해 로마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원래의 모습과 크게 달라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필락스는 고대 로마의 ‘보초병’(guard)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3. 페센니 운문(Fescennie Verses)


페센니 운문은 이태리에서 생겨난 초기 시 형식이다. 이 운문들은 일상적으로 로마의 풍자극이나 희극의 대본으로 각색되었다. 


역사가들은 화병(花甁)에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많은 희곡들이 이탈리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공연되다가 이후 라틴어로 번역되어 로마 연극의 요소가 되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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