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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28. 2022

그리스 연극의 전통과 영향

그리스 연극-10

 고대 그리스인들은 서방 세계의 문명과 문화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철학과 미학의 효시였고, 피타고라스는 수학, 히포크라테스는 의학,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가장 큰 공헌은 바로 연극이었다. 그리스의 연극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연극의 기원이 되었다. 그것은 기원전 600년경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제의(祭儀)로 시작되었다. 이후 최초의 배우라 할 수 있는 테스피스가 등장해 서사시 속의 대사들을 작품 속 인물의 시각에서 말하고, 게다가 관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연극을 배우와 관객의 상호적 작용으로 만들었다. 이곳 저곳을 유랑하며 연기하던 테스피스는 가면과 분장, 의상을 통해 자신의 독백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였다. 기원전 5세기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에 의해 제2, 제3의 배우들이 등장하였고, 코러스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그리고 경직되고 구조화되었던 연극은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더욱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리스 도시국가들 곳곳에 야외극장이 세워지고 오락뿐 아니라 종교적 행사와 행렬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무대의 배경을 이루던 건물 뒤에는 공연에 사용된 기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아에로레마(Aeorema), 에케클레마(Ekeclema), 페리악토이(Periactoi)라고 불리던 이것들은 당시의 최신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중 아에로레마가 가장 일상적인 기구였는데 그것은 배우들을 허공에 올리고 내리는 데 사용된 커다란 크레인이었다. 이는 주로 신이 무대에 등장할 때 작동됨으로써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기구 위의 신)라는 용어가 만들어진다. 크레인에 매달려 등장한 신은 복잡하게 꼬인 사건들을 일거에 해결하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다. 에케클레마는 바퀴가 달린 넓은 판이었다. 이것은 때때로 죽은 자의 시신을 무대 위에서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무대에서 살인이나 자살의 장면이 보일 수 없었으므로 관객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대 위에서 사람이 죽으면 실제로 그 사람의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미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페리악토이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 무대의 양 면에 세워져 사람의 손을 사용하지 않고 무대의 배경을 바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 기계들은 나무나 밧줄, 금속으로 만들어진 도르래나 지렛대, 바퀴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공연에서 사용되었다.  

그리스의 연극은 오늘날의 뮤지컬과 매우 흡사했다. 노래와 춤이 있었고 악기의 연주가 있었다. 이는 연극이 공연 예술의 기원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를 가리켰던 ‘히포크리테’(hypocrite)라는 단어는 오늘날 ‘위선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겉과 속이 다른 ‘연기자’라는 의미에 부정적인 느낌이 가미되었던 것이다. 배우들은 보수를 받는 프로 연기자와 아마추어 연기자들이 섞여있었고, 주인공 역할은 언제나 프로 연기자나 희곡작가가 선택한 유명 배우의 몫이었다. 가끔은 작가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현대의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연극에는 코러스가 있었다. 그들은 노래와 춤으로 극에 분위기를 더하였는데 주요 부분은 프로 가수나 무용수가 담당하였다. 모든 배우들은 남자였고 여성은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었다. 여성과 동물의 역은 가면으로 대신했다. 가면들은 나무나 천, 진흙으로 만들어졌고 가끔 동물의 털이나 인간의 머리칼로 덮여있었다. 눈 부분의 구멍은 작았지만 입 부분은 크게 뚫려 배우의 목소리가 쉽게 공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광활한 객석에서 더 크고 확실히 보이기 위해 배우들은 높은 신발을 신고 머리 장식을 꽂았으며 착시 현상을 위해 의상에 수직의 스트라이프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비극과 희극은 결코 섞이지 않았으며 현대 연극의 상징이 된 미소 짓는 가면과 눈물 흘리는 가면은 이 구분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비극과 희극의 유형은 특히 그 주제 면에서 크게 달랐다.


희극은 속되고 외설적인 유머를 담고 있었는데 즐거운 삶과 쾌락의 가치를 유머러스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통을 존중하고 비도덕적인 것은 비난하였다. 희극은 하류 계층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상류층에서는 언급할 수 없는 주제를 농담처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희극이 쓰거나 공연하기에 가장 쉬운 것으로 여겼다. 대부분의 희극에서 배우들의 의상은 동물의 모습이었다. 가면은 과장되어 있었고 기괴하여 관객들이 희극적 주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비극은 단지 슬프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었고, 보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구성은 혼돈스럽거나 산만하지 않고 정해진 리듬과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속된 것은 배제하고 관객을 자극하는 행위는 지양되었다. 비극은 인간의 감정과 성품의 깊은 본질을 탐색하였다. 그것은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등장인물 하나하나와 연결될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희극보다는 보다 정교하여 상류층의 정서에 적합한 것이었다. 의상은 일반적으로 일상의 의복이었으나 좀 더 멋지고 정교했다.  


그리스의 희곡은 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다. 공연 전에 디오니소스 신에게 희생이 바쳐졌다. 음악과 시의 신이었던 아폴로는 배우와 작가들에게는 더욱 경외되는 존재였다. 또한 뮤즈들 역시 숭배되었다. 그리스에는 예술의 아홉 여신들이 각각의 뮤즈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 중 춤과 음악의 뮤즈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와 에우테르페(Euterpe)는 그리스 연극의 주요 요소를 이루었고, 칼리오페(Calliope)는 서사시의 뮤즈로 희곡 대부분의 기반이 되었다. 탈리아(Thalia)와 멜포메네(Melpomene)는 각각 희극과 비극을 대표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연극을 통해 현대 세계에 많은 것을 주었다. 오늘날의 모든 배우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혁신적인 사상의 산물이었다. 현존하는 많은 그리스극들이 2500년의 세월을 격해 당대의 문화와 전통을 현대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극의 많은 기구들도 고대의 아에오레마, 에케클레마, 페리악토이에서 나온 것이며 연극의 기본적인 요소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무대, 의상, 분장 등은 현대극에서도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 영화, TV 드라마, 연극도 희극과 비극이 주를 이루거나 혼합되어 있다. 또한 많은 극장들이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음향을 만들어낸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본 따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연극이 오늘의 사회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변치않는 본성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야기는 정직과 용맹과 존중이라는 가치를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연극은 이러한 이야기에 생생함을 부여하여 관객들의 마음과 양심에 새겨지게 한다. 관객들은 극 중 인물과 동일화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들이 처한 곤경과 자신의 성품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연극은 또한 관객과 배우들 모두를 위해 인간의 마음을 깊이 고찰하고 다른 인간의 삶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한다. 연극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문화는 연극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그리스인들의 연극 전통은 인류의 정체성에 중요한 일부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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