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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0. 2022

제 몸처럼 살 수 있다면

이현주 :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이현주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성인(聖人)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갈 때까지

핏줄이 제 길을 벗어난 적 있으며

허파가 제 일을 마다한 적 있느냐?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공자(孔子)와 도척(盜拓)이 다르겠느냐?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갈 때까지

하늘님 계시는 유일한 곳

지금 여기를 떠난 적이 있느냐?

자기 몸처럼만 살았다면야

성인(聖人)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


When It Comes to a Body

                      Lee, Hyun-joo


When it comes to a body,

There is no one but is a saint.

While we come empty, return empty

Have the veins gotten out of their right course?

Have the lung given up its work?

When it comes to a body,

Who can tell Confucius from a thief?

While we come naked and return naked,

Has the body left here,

The only place where God is?

If we live like our body,

There will be no one but is a saint.    


목사이자 시인이며 동화 작가, 번역 문학가인 이현주 님의 시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몸은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지치면 지친 대로, 힘이 나면 그런대로 언제나 제 자리에 남아서 제 일을 할 뿐이죠. 언제나 솔직한 제 몸 같기만 하다면 우리는 누구나 거짓 없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죠. 몸은 제 자리인데 마음은 슬픔, 기쁨, 절망, 희망, 좌절과 자만의 극과 극을 돌고 또 돕니다. 그래서 가만있는 우리의 몸을 뒤흔들고, 괴롭히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유한한 것은 육체이고, 정신은 영원하다고 하던가요? 그런데 영원이란 것이 그렇듯 나약한 것이라면 나는 차라리 유한한 것을 취하려 합니다.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것, 그것이 인생임을 이제 깨닫습니다. 영원의 세계는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맡길 뿐입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한 이 땅에서 진정한 기쁨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차라리 매일처럼 늙어가는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깊은 사유(思惟)의 순간만큼,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일 것입니다. 몸처럼 솔직하게, 세월에 순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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