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Feb 24. 2022

테렌티우스의 희극

로마 연극-4

로마의 극작가 테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 195-159 B.C.)는 기원전 336-250년 사이에 공연된 그리스의 ‘신희극’(New Comedy)들을 번역하고 각색했다. 그 작품들은 이후의 풍습극(Comedy of Manners)에 거의 완벽한 형식과 라틴어 표현을 제공하였다. 테렌티우스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주로 그가 적대적인 비판에 대항해 스스로를 변호했던 자신의 희곡 속의 프롤로그나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 70~135 A.D.)가 쓴 테렌티우스 전기, 그리고 그의 희곡들에 대한 종교지도자 도나투스(Donatus)의 논평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있는 사실은 테렌티우스가 아프리카 대륙의 카르타고(Carthage)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노예로서 로마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카르타고와 로마는 평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전쟁 포로로 끌려온 것이 아니고 그의 주인인 원로원 의원 테렌티우스 루카누스(Terentius Lucanus)가 돈을 주고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주인의 배려로 교육을 받고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테렌티우스는 중간 정도의 신장에 검은 피부였다. ‘푸스쿠스’(fuscus)라고 표현되는 그의 피부색은 일반 로마인들 사이에 눈에 띄게 검었고 무어 사람들(Moor;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종족)의 피부색을 하고 있었다.


테렌티우스는 그리스 문학과 문화에 몰두해있던 당대의 젊은 귀족들로 구성된 ‘스키피오 서클’(Scipionic Circle)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테렌티우스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쓴 것이 아니라거나 학식 있는 타인들의 도움을 상당히 받았으리라는 악의에 찬 비판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


테렌티우스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을 노령(老齡)의 극작가 카이실리우스(Caecilius)에게 읽어주었는데 그는 그 작품을 크게 호평하면서 테렌티우스에게 극작을 계속할 것을 권유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166-160년 사이에 총 여섯 편의

희곡을 쓴 뒤 그는 라틴어로 각색할 희곡들을 구하기 위해 그리스를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병을 얻어 그만 숨을 거두게 된다. 그는 결혼을 하였지만 사망 당시의 유족은 외동딸 하나였으므로 그녀가 ‘아피아 가도’(the Appian Way; 고대 로마의 도로)에 위치한 부친의 작은 땅을 물려받았다. 그녀는 로마의 기사와 결혼하였다.  


테렌티우스의 희곡 여섯 편은 모두 완전한 생태로 남아있다. 저작 순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어느 해에 초연되었고, 어떤 축제에서 누구에 의해 공연되었으며 심지어 연극에 사용된 음악을 편곡한 뮤지션에 대해서까지 기록이 남아있다. 이렇듯 완벽하게 작품 전체가 남아있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어떤 장르를 막론하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의 작품들이 이렇듯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와 그의 작품이 당대뿐 아니라 이후의 시대에도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케로(Cicero)와 호레이스(Horace), 퀸틸리아누스(히스파니아 출신으로 로마 제국의 수사학자, 35~100 A.D.) 등은 모두 테렌티누스의 정교하고 세련되면서도 꾸밈이 없는 희곡들이 라틴어의 한 형식을 발전시켰다고 찬양하였다. 그는 또한 서양의 희극 전통에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테렌티우스의 영향은 수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스페인의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 1562~1635),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등 르네상스의 작가들 뿐 아니라 20세기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버나드 쇼(Bernard  Shaw, 1856~1950)의 희극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작가는 프랑스의 몰리에르(Molieré, 1622~1673)로 그는 테렌티우스의 인본주의(人本主義) 접근 방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가였다.


아델포(Adelphoe, 형제들)


테렌티우스의 여섯 작품 가운데 마지막 희극인 ‘아델포’(Adelphoe, 형제들)는 기원전 160년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Aemilius Pallus, 로마 공화정 시기의 정치가)의 장례식과 관련된 여러 행사에서 공연되었다. 처음에는 장군이었던 고인(故人)을 기념해 검투 경기도 함께 공연되었다. 이 공연을 주재한 파울루스의 양손자가 테렌티우스의 친구여서 그의 작품에 도움을 주었다는 의심이 제기되기도 하였고, 경쟁 작가들로부터는 테렌티우스가 그리스 극의 원본을 표절하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극의 포롤로그에서는 그러한 논란에 대한 작가의 자기 옹호가 담겨 있다.  


극은 아이러니와 위트로 가득 찬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작가인 테렌티우스는 극의 원전을 상세히 밝히면서 “뛰어난 사람들이 작품을 쓰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악의에 찬 비난”을 강하게 부정한다. 테렌티우스는 프롤로그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표절이라거나 학식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비평가들에 대항해 자신을 변론하였던 것이다. 그는 관객들에게 “주의 깊게 극을 보아달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이 칭찬을 받아야 하는지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지를 판단해 달라”라고 말한다. 그렇게 극은 시작된다.  

극의 공간적 배경은 아테네 한 시민의 집 앞이다. 때는 아침. 미치오(Micio)라는 인물이 등장해 자신의 아들 아이스키누스가 간밤에 외박을 했다며 불안해한다. 그는 자신이 너무 관대하고 개방적이었음을 자책한다. “아이가 아직 돌아오질 않았어요. 이런저런 생각에 불길한 마음까지 든답니다. 애가 감기에 걸리지나 않았는지, 어디에 넘어져 다리라도 부러진 건 아닌지...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요... 사실 아이는 제 아들이 아니랍니다. 형님의 아이예요. 형님과 저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매우 달랐지요.”


자신과 자신의 형 데메아(Demea)의 다른 점을 상세히 말하면서 미치오는 자신을 여가를 즐기고 돈 쓰기를 좋아하는 도시 총각이라고 소개한다. 그와는 반대로 데메아는 유부남이었고 매우 검소했으며 시골에 살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데메아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 다를 양육할 형편이 되지 못해 큰 아들을 동생에게 입양을 시켜야 했다. 두 형제가 전혀 달랐으므로 두 아이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식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엄격한 훈육주의자였던 데메아는 둘째 아들이었던 크테시포를 매우 권위적이고 엄격하게 키웠으며 반면 미치오는 입양한 아이스키누스를 매우 자유분방하게 양육하였다. 데메아의 모토는 “공포의 권위”였고, 미치오 생각은 “처벌의 위협만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하면, 그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만 조심해서 행동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로마의 ‘보수주의’와 그리스의 ‘자유주의’라는 두 개의 상충하는 철학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데메아와 미치오는 극이 공연되던 당시 로마 사회의 가치 충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되자 아이스키누스와 크테시포는 연애를 시작해 늘 그에 따르는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미치오가 집 밖에 나와 외박한 아이스키누스를 초조히 기다릴 때, 데메아가 등장해 불 같이 화를 낸다. 아이스키누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한 여자 노예를 납치하고, 그녀를 매춘부로 팔아넘기려던 포주를 흠씬 두들겨 팼다는 것이었다. 온 마을 사람이 다 알게 되었다며 데메아는 그 모든 것이 미치오가 아이를 지나치게 방관한 때문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자 미치오가 이렇게 대꾸한다.      


“젊은 녀석이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니야. 말썽을 좀 피울 수도 있지. 형이나 내가 그러지 못했던 것 단지 돈이 없었기 때문이잖아.”


아이스키누스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미치오는 형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아들을 찾으러 떠난다. 다음 장면에서 아이스키누스가 미치오의 집으로 여자 노예 바키스를 데리고 들어온다. 그 뒤로 포주인 사니오가 따라 들어오면서 노예에 대한 몸값을 치르라고 소리친다. 미치오의 하인인 사이루스가 사니오를 막아서며 아이스키누스가 아직 젊고 충동적이니 이해하라고 달랜다. 그리고 노예의 몸값은 곧 지불하겠노라 다짐한다. 포주는 투덜거리면 바키스와 다른 노예들을 팔기 위해 사이프러스의 노예 시장을 향해 떠난다.  


다음으로 둘째 아들인 크테시포가 흥분하여 집으로 들어온다. 아이스키누스가 납치한 여자 노예가 사실은 크테시포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인 사이러스에게 아이스키누스를 찬양한다. “참 멋진 형이야. 형은 자신보다는 늘 날 먼저 생각하거든. 욕이나 나쁜 소문은 혼자 다 들으면서 말이야. 내 문제고, 내 잘못인데도 말이지.”  


이어지는 장면은 미치오의 집에서 소스트라타라는 여인의 집 옆으로 이동한다. 그녀의 딸 팜필라는 임신 9개월이다. 유모가 그녀의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산파와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아이스키누스를 부르라고 한다. 바로 그때 집안의 하녀인 게타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 들어온다. “세월이 왜 이렇지! 이건 죄악이야! 오 사악한 세상, 더러운 악당!” 그리고 소스트라타에게 아이스키누스가 여자 노예 바키스를 데리고 도망쳤으며 그녀의 주인인 포주를 두들겨 팼다고 말한다. 소스트라타는 분노하며 딸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나. 아버지 없는 자식을 낳고 이제 천박한 여자로 낙인찍혀 시집도 갈 수 없을 거야.” 그녀는 아이스키누스가 팜필라에게 반지까지 주며 결혼을 약속했지만 이제 그녀와 곧 태어날 자식마저 버린 것이라 확신한다. 하녀 게타가 산파를 부르러 뛰어나갈 때, 소스트라타는 아이스키누스를 고소하리라 다짐한다.


다음 장면에서 데메아가 미치오의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키운 아들 크테시포를 찾는다. 그는 여전히 미치오가 키운 아이스키누스를 나쁜 아들로, 자신이 양육한  크테시포를 착한 아들로 생각한다. 빈틈없고 똑똑한 하인 사이러스는 데메아를 막아서며 집안에 크테시포와 바키스가 함께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사이러스는 늘 잘난 체를 하는 데메아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므로 그를 속여 골탕을 먹이려 한다. 그는 데메아에게 크테시포가 마을 외곽에 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그를 따돌린다.


한편 미치오는 아이스키누스를 찾아 나섰다가 게타와 마주친다. 화를 참지 못하며 게타는 아이키누스가 임신한 팜필라와 결혼할 의무를 저버렸다고 비난하며, 소스트라타가 그를 고소할 것이라는 사실을 얘기한다. 악화되는 상황에 충격을 받은 미치오는 아이스키누스를 찾아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집으로 돌아온 미치오는 마침내 아이스키누스와 크테시포 형제와 두 여자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아이스키누스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동생을 위해 바키스를 납치했고, 사실은 팜필라를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미치오는 두 쌍의 남녀를 혼인시키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데메아가 다시 들어온다. 아들을 찾아 온 마을을 돌아다닌 그는 아들이 여자 노예와 함께 마치오의 집에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한다. 그리고 이 복잡한 상황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러자 데메아는 이 모든 책임은 아이를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게 키운 미치오에게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데메아는 미치오가 모든 일에 비용을 댄다면 두 아들과 동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제안 한다. 그리고 미치오에게 진정 관대하고 자유분방하다면 사이루스와 그의 아내를 노예 신분에서 풀어주고, 팜필라의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며, 신혼부부 모두를 책임지라고 말한다. 예측 못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가운데 데메아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자임하며, 자신의 보수적인 지혜로 볼 때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동생인 미치오라고 선언한다. 미치오는 상대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으므로 자신의 조카와 수양아들이 자신의 지나친 자유분방함과 우유부단함을 따르게 된다면 그들의 삶을 헛되이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때 데메아가 가족 모두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것이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말한다. 모두가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결혼식 준비를 위해 미치오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 결말 부분에서 데메아와 미치오 둘 중 누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왜냐면 결국 모두가 어느 정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사랑을 실현하였고, 데메아는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미치오는 자신의 자유로운 사상의 장저을 자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데메아라는 인물은 로마의 엄격하고 권위적인 전통을 나타낸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이 낮은 신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리고 미치오의 낭만적인 생각을 혐오하고 그의 양육 방식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미치오는 그리스인들의 보다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전통을 고수하는 전환기적인 인물로 보인다. 아이스키누스의 곤경을 알게 되자 그는 보다 책임 있게 행동하라는 경고를 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오늘날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양육과 교육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극은 데메아의 엄격함과 훈육이 젊은이의 삶에 분명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한다고 말하면서도, 미치오의 관대함과 자유분방함이 가져오는 신분을 넘어선 사랑과 배려를 아울러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플라우투스의 희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