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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09. 2022

중세의 연극(2)

신비극과 도덕극

신비극(Mystery Plays)과 도덕극(Morality Plays)


신비극은 성서의 이야기를 그려내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다소 변형된 이야기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말 그대로 성서의 신비---하나님과 예수님의 신비를 다룬다. 몇몇 유럽의 도시들, 특히 영국의 도시들에서는 성서 속의 유명한 이야기 대다수를 묘사한 연작 희곡들이 공연되었다. 예수의 수난,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 예수의 삶 그리고 그가 행한 기적들이 연극의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이런 이유로 신비극은 ‘기적극’(Miracle Plays)이라 불리기도 한다. 세상의 창조, 대홍수, 요셉의 이야기도 인기가 높았다. 그러한 성서의 이야기들이 시대 순으로 이어진 ‘연작극’(連作劇, Cycle Plays)이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성서 속의 창세기에서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48 가지 이야기로 이 극들은 15세기 중반 영국의 요크(York) 지역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고, 당시 만들어진 대본이 현재 영국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 있다.


버나쿨러 극의 또 다른 형태인 도덕극은 직접적인 성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세 교회의 교리에 기초해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삶의 교훈을 제시하였다. 성서 속의 인물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동시대 인물들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한 인물들은 실제의 인물들이 아니라 비유적이고, 의인화된 개념을 제시하는 알레고리의  기법으로 그려졌다. 도덕극은 성서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비극과 구분된다.


신비극과 도덕극은 오늘날의 단막극 정도의 짧은 극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의 관객들이 긴 연극에 익숙하지 않아 길어지면 곧 흥미를 잃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적 배경도 성서의 시대가 아니라 공연 당시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었다. 이 중세의 극들은 관객들의 관심과 그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공연 끝까지 관객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진지한 교훈에 희극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막간에는 음악과 춤을 넣어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마치 잔치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중세의 공연


교회에서 이루어진 성찬극은 라틴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이 이해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하지만 버나쿨러 극에는 관객들의 친구와 이웃이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모두 전문 배우들이 아니었으니 오늘날의 동호회 연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비극의 경우에는 직업별 길드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살려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선공(船工)이나 목수들은 ‘노아의 방주’, 금 세공인들은 ‘구유 앞의 세 동방박사’, 제빵업자들은 ‘최후의 만찬’, 어부들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공연했던 것이다. 이들은 연극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을 선전하였으니 오늘날의 TV나 영화 속 상업광고의 원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도 공연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대사와 연기에는 다양한 연주자의 반주가 따랐고, 공연에 축제와 같은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하긴 연극을 보는 시간만큼은 일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축제였을 것이다.


연작(連作)의 극들이 야외극의 형태로 여러 시간 혹은 여러 날 동안 공연되었으므로 그것을 주재하는 감독관이 있었는데 일반 관리나 가끔 고위직의 시민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 자리는 영향력이 있었고 돈도 벌 수 있는 자리였다. 야외극의 수준이 도시나 마을의 위상을 나타내므로 감독관들은 공연 장소나 시간을 정할 권한이 주어졌다. 또한 극을 특정 길드에 배당하는 것도 그들의 권한이었다. 사실 길드들 간의 경쟁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에---예를 들어 최후의 만찬 같은 경우 제빵업자 길드와 포도주 길드 사이에--- 입찰 전쟁이 끝낸 뒤에는 감독관들의 재산이 불어나곤 했다고 한다.  


중세 말기의 연극


르네상스로 서서히 이전하던 중세 말기에 이르러 연극은 교회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종교적인 주제에서 세속적인 주제로의 변화가 느리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었는데, 첫째는 르네상스의 이념들이 중세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구원에 대한 갈망을 감소시켜 일상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신교(프로테스탄트, Protestant)의 성장이 유럽 여러 지역에서 교회가 지녔던 지배력을 희석시켰기 때문이다.---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1517년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한다.--- 또 다른 이유는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더욱 즐겁고 재미있는 세속적 요소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연극을 보는 것은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노동에서 벗어나 일종의 파티에 참가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연극은 교회의 제단을 나와 거리로 나가게 되었고,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더욱 세속적이 되어갔다. 아래에 중세 말기의 대표적 도덕극 ‘에브리맨’(Everyman)을 소개한다.


도덕극 ‘에브리맨’은 알레고리(allegory, 비유법)의 기법으로 쓰여졌다. 주인공의 이름이 ‘모든 사람’을 뜻하는 ‘에브리맨’인 것은 이 극이 인간 전체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모두가 겪게 될 죽음에 직면한 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에브리맨(Everyman)


극은 짧은 프롤로그와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신(神)이 등장해 ‘인간들이 물질적 부(富)에만 몰두해 자신을 따르지 않고 있다’라고 개탄한다. 신은 ‘죽음’(Death)에게 심판을 위해 ‘에브리맨’을 소환하라고 명령한다. ‘죽음’이 도착해 ‘에브리맨’에게 이제 하늘의 심판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불안해진 에브리맨은 조금의 시간을 더 원하였지만 ‘죽음’은 이를 거부하고 긴 여행에 동반할 친구를 찾는 것만 허락한다.  


‘에브리맨’의 친구인 ‘우정’(Fellowship)은 어느 곳에나 그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에브리맨이 가야 할 곳을 알고 나자 동행을 거부한다. ‘에브리맨’은 ‘친척’(Kindred)과 ‘사촌’(Cousin)이라는 이름의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여행에 함께 할 것을 청하지만 그들에게도 거절당한다. 특히 ‘사촌’은 왜 모든 사람들이 그와 동행하지 않으려 하는 지를 설명하며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최후 진술서를 써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후 ‘에브리맨’은 ‘재화’(財貨, Goods)에게 같이 가줄 것을 부탁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재화’가 있는 곳에는 이기심이 있기 때문에 신의 심판이 혹독하리라는 것이었다.    


실망한 ‘에브리맨’은 ‘선행’(善行, Good Deeds)이라는 여자 친구를 찾아가는데 그녀는 동행을 허락하면서도 ‘에브리맨’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너무 약해졌다고 말한다. ‘에브리맨’과의 여행을 위해 ‘선행’은 자신의 여동생인 ‘지식’을 불러 함께 ‘고백’(Confession)을 찾아간다. ‘고백’이 동석한 자리에서 ‘에브리맨’은 신에게 용서를 구하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한다. 그러고 난 뒤에야 ‘에브리맨’은 죄의 사함을 얻고 그 결과 ‘선행’은 ‘에브리맨’의 여행에 동반할 힘을 얻는다.     


‘선행’은 또한 ‘아름다움’(Beauty), 힘(Strength), 신중함(Discretion)과 오감(五感, Five Wits)에게 동행을 청한다. 그들은 ‘선행’의 제안에 동의하고 성사(聖事)를 받기 위해 사제를 찾아간다. 성사 후 ‘에브리맨’이 그들에게 자신의 여행이 어디서 끝날 것인가를 말하자 ‘선행’을 제외한 모두가 다시 그의 곁에서 떠나간다. 심지어 ‘지식’조차도 죽음의 순간까지만 함께 있을 수 있고 ‘에브리맨’이 육체를 떠나면 더 이상 그와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침내 ‘에브리맨’은 ‘선행’과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둘은 하늘로 올라가 천사들의 환영을 받는다. 극은 ‘박사’(Doctor)가 등장해 사람을 죽음 이후까지 동반하는 것은 ‘선행’뿐임을 설명하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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