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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7. 2022

르네상스 연극(2)

영국 르네상스 연극의 시작 

영국 르네상스 연극의 시작 


영국의 초기 르네상스 드라마는 중세 말 신비극과 도덕극의 전통에서 비롯된다. 연극 공연들은 종교적 주제에 맞추어져 있었고 주로 성가대원들이나 수사(修士) 혹은 마을의 상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극 속에 직공들의 길드에 의해 연극이 공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5세기 말에 이르면 새로운 형식의 연극이 등장한다. 짧은 연극 공연과 연회가 귀족들의 저택이나 궁정에서 특히 휴일에 공연되었다. ‘막간극’(Interludes)이라고 불리던 이 극들은 초기의 교훈적 성격에서 벗어나 순전히 세속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중세의 공연들에 비해 보다 희극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었다. 이 휴일의 연회들은 문서로 남아있지 않아서 대본은 사라지거나 소멸되었고, 다음 단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점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존하는 최초의 세속극은 헨리 메드월(Henry Medwall, 1462~1502))의 ‘풀겐스와 루커스’(Fulgens and Lucres)라는 작품이었는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어린 시절 시종으로 있었던 모튼 추기경(Cardinal Morton)의 저택에서 1497년에 공연되었다. 초기의 투더(Tudor) 왕조(1485-1603)의 막간극들은 음악과 춤을 가미함으로써 보다 정교해졌고, 특히 존 헤이우드(John Heywood, 1497~1580))의 대표적인 막간극들은 프랑스 소극(笑劇, farce)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르네상스 영국의 막간극, Sex and Music 

이 시기의 연극들은 교훈적인 내용에서 여흥을 위한 것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특히 종교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초점이 옮겨가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존 스켈턴(John Skelton, 1463~1529)의 ‘매그니피선스’(웅대함, Magnyfycence, 1515)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덕’과 ‘악덕’이라는 등장인물이 나옴으로써 중세의 우화적인(allegorical) 도덕극과 유사했지만 실제로는 당시의 최고 권력자였던 울지 추기경(Cardinal Wolsey, 1473~1530)에 대한 정치적 풍자였다. ‘매그니피선스’는 대단히 선동적이어서 스켈턴은 울지의 분노를 피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성소(聖所)로 숨어들어야 했다.  


최초의 역사극들은 1530년대에 등장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존 베일(John Bale, 1495~1563)의 ‘요한 왕’(King Johan, 1538)이었다. 이 작품은 도덕과 종교의 문제를 종교개혁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었다. 이 역사극들은 연극적 수단으로 역사를 사용하는 선례를 만들었고 이후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에 의한 영국 사극이나 16세기 후반의 연대기극(Chronicle Plays)의 기초를 놓았다. 


종교개혁뿐 아니라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고전적인 인본주의(Humanism) 사상이 영국을 휩쓸게 되자 고전과 고전극에 대한 관심이 특히 대학들에서 높아지기 시작했다. 라틴어로 된 대본들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라틴어 시와 희곡들이 영어로 각색되었다. 1553년, 니콜라스 우돌(Nicholas Udall, 1504 ~1556 )이라는 이름의 이튼(Eaton) 학교 교장이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 같은 로마 작가들의 전통적인 희극에 기초해 ‘랄프 로이스터 도이스터’(Ralph Roister Doister)라는 희극을 쓰게 된다. 이 작품은 ‘허풍쟁이 군인’이라는 로마 극의 전형적인 인물을 소개한 최초의 영국 희극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희극적 인물은 이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팔스타프’(Falstaff)와 같은 인물로 발전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 캠브리지 대학의 ‘윌리엄 스티븐스’(William Stevens, 1530~1575 )가 ‘감머 거튼의 바늘’(Gammer Gurton’s Needle)이라는 희극을 써서 학생들의 호응을 받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로마 희곡의 구조를 따라 최초로 5막으로 구성되었다.

'고보덕'과 '랄프로이스터 도이스터'의 등장인물들과 의상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에 영향을 받은 영국의 작가들은 서서히 자신들만의 비극을 쓰기 시작한다. 이러한 비극들은 리처드 에드워즈(Richard Edwards, 1525~1566)의 ‘데이몬과 피티아스’(Damon and Pythias, 1564)와 존 픽커링(John Pickering,)의 ‘호레스테스의 역사를 담은 악(惡)에 관한 새로운 막간극’(New Interlude of Vice Containing the History of Horestes, 1567) 등이었다. 이들 작가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던 로마의 작가는 세네카(Seneca)였다. 그의 희곡들은 극작가 존 헤이우드(John Heywood, 1497~1580)의 아들인 제스퍼 헤이우드(Jasper Heywood)에 의해 1589년 영어로 번역되었다. 세네카의 희곡은 수사적인 연설, 피와 폭력 그리고 유령들을 등장시키고 있었으며 이것들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희곡과 제임스 1세 시대(1603~1625)였던 자코비언(Jacobean) 희곡들에서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세네카 방식으로 써진 최초의 영국 비극은 토마스 색빌(Thomas Sackville, 1536~1608)과 토머스 노턴(Thomas Norton, 1532~1584)이라는 두 명의 법관들이 쓴 '고보덕'(Gorboduc, 1561)이었다. 이 작품은 무운시(無韻詩, blank verse)로 이루어진 최초의 작품이었다. 무운시란 각운(rhyme)이 없는 약강 오보격(弱強五步格, iambic pentameter)의 시로 1530년대 영국의 소네트 작가들이었던 와이엇(Sir Thomas Wayatt, 1503~1542)과 서레이의 백작 헨리 하워드(Henry Howard, Earl of Surrey, 1517~1547) 등에 의해 영국의 문학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 무운시의 사용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웅장한 시행과 셰익스피어의 절묘한 극시(劇詩)가 등장하는 길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연극 애호가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등장으로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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