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르네상스 연극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으로도 불리며 1562년에서 1642년까지의 영국 연극을 가리킨다. 연극 공연은 주로 런던 교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런던 시 안에서는 연극 공연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랑극단들은 영국 전역을 돌며 공연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독일이나 덴마크 등 해외에서도 공연을 하였다.
영국의 르네상스 연극은 최초의 영구적인 극장이 세워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 초기에 공연장으로 사용된 장소는 주로 런던의 여인숙(inns)이나 4개의 법학원(法學院, The Inns of Court)의 안마당이었는데 이곳들은 영구적인 극장이 세워진 후까지도 한 동안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법학원과 여인숙 마당의 무대
영국 최초의 극장은 ‘레드 라이언’(Red Lion)이라는 이름으로 1567년 세워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폐쇄된다. ‘시어터 극장’(The Theatre)을 포함한 영구적인 공연장들은 1576년에 개장되기 시작한다. 대규모의 수익형 대중 극장들의 설립은 영국의 르네상스 연극을 성공시키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극장들이 개관되자 연극은 일시적인 행사가 아니라 고정되고 항구적인 현상이 되었던 것이다. 영구적인 극장의 건설은 1572년 런던 시가 역병을 막기 위한 조치로 야외에서의 공연을 금지시킴으로써 촉발되었다. 런던 시는 1575년 공식적으로 배우들을 시내에서 추방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런던 교외에 극장들이 지속적으로 건설되었다. 제임스 버비지(James Burbage)는 폐쇄된 극장 ‘레드 라이언’의 소유자이자 자신의 처남이었던 존 브레인(John Brayne)과 함께 1576년, 쇼레디치(Shoreditch) 지역에 ‘시어터 극장’을 세운다. 그리고 1575년에서 1577년 사이에 제롬 세비지(Jerome Savage)로 추정되는 인물에 의해 뉴잉턴 버츠(Newington Butts) 극장이 들어섰다. ‘시어터’에 이어 그 근처에 ‘커튼’(Curtain Theatre, 1577), 로즈(The Rose, 1587), ‘스완’(The Swan, 1595), ‘글로브’(The Globe, 1599), ‘포춘’(The Fortune, 1600), ‘레드 불’(The Red Bull, 1604) 등의 극장들이 지속적으로 건설되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극장
로즈 극장과 글로브 극장 터에 대한 20세기 후반의 연구에 따르면 런던 외곽의 극장들은 각각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었다. 공공극장들은 3층의 건물로 중앙의 빈 터를 둘러싸고 지어졌다. 다변형으로 이루어져 대체적으로 원형의 효과를 노리고 있었으며(‘레드 불’과 ‘포춘’은 사각형의 형태였음), 3층으로 된 갤러리(객석, galleries)에서는 중앙의 무대를 내다볼 수 있었다. 중앙으로 돌출된 무대 주변 삼 면에는 갤러리에 자리 잡지 못한 관객들이 서서 공연을 보았고, 그 끄트머리 부분은 배우들의 등퇴장, 또는 악사들의 자리로 제한되어 있었다. 무대 뒤의 상단 부분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발코니로 이용되었으며, ‘줄리어스 시저’에서는 배우들이 그곳에서 관객들을 내려다보며 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극장은 대체로 목재와 벽토로 지어졌는데, ‘스원 극장’ 같은 곳에서는 단단한 돌들이 사용되었다. 전체적으로 극장은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 다른 형태의 극장은 ‘블랙프라이어즈’(Blackfriars) 극장의 건축과 더불어 발전되었다. 이 극장은 1599년 이후 오랫동안 규칙적으로 사용되었다. ‘블랙프라이어즈’는 초기의 극장들보다는 작았지만 그것들과는 달리 지붕이 있었고 현대의 극장들과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어 ‘화이트프라이어즈’(Whitefriars, 1608), 칵핏(Cockpit, 1617)과 같은 소규모의 실내극장들이 이어졌다. 1629년 폐쇄된 ‘화이트프라이어즈’ 극장 부근에 세워진 ‘솔즈베리 코트 극장’(Salisbury Court Theatre)까지 치면 당시 런던의 관객들은 여섯 개의 극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글로브’, ‘포춘’, ‘레드 불’ 등 야외극장과 함께 앞서 언급된 ‘블랙프아이어즈’, ‘칵핏’, ‘솔즈베리 코트’ 등 소규모의 실내 극장들이 민간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1630년대의 관객들은 반세기에 걸친 연극의 발전을 통해 큰 혜택을 받고 있었다. 말로,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들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정기적으로 공연되었고(주로 공공 극장들에서), 새로운 작가들의 최신 희곡들은 주로 민간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1580년 경, ‘시어터’와 ‘커튼’과 같은 극장들은 여름철이면 언제나 만원이었고, 당시 극장들의 총 수용인원은 5,000명에 이르렀다. 1610년 이후, 새로운 극장, 새로운 극단들은 무려 10,000명 이상의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무렵 관람 비용은 전반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입장료는 극장에서의 좌석 위치에 따라 1 페니에서 6펜스까지 차이가 컸는데,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거나 다른 관객들과 떨어져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비싼 관람료 지불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