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도덕적-예술적 단계
중세의 시작과 함께 연극은 신성함을 해치고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이라는 오명과 함께 금지되었다. 공연은 지하로 숨어들고 서커스 같은 곡예의 형태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그리스-로마 시대의 빛나던 연극의 전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중세 천 년(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 15세기 르네상스의 시작)이 끝나가면서 신(神) 중심의 세계가 인간 중심의 세계로 이전하자 억눌렸던 인간의 예술적 본성이 눈 뜨게 되고 연극에 대한 관심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교회에 의해 금지되었던 연극은 교회에 의해 다시 부활한다. 당시 성경은 라틴어나 히브리어로 되어있어서 일반 신도들은 성경의 내용을 읽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복음서의 내용을 전달할 필요를 느낀 사제들은 교회 안에서 예수의 삶과 기적들, 성자들의 이야기를 연극적 형태로 재현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중세 말 연극이 다시 시작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예수의 탄생, 삶, 죽음과 부활이 연극으로 만들어졌던 종교적 시기의 연극을 기적극(Miracle Play) 혹은 신비극(Mystery Play)이라 한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성찬의 의식도 연극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고 성찬극(Liturgical Play)이라 불리는 의식이 연극의 종교적 시기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술에 대한 본성은 종교적 의식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성경 속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 중심의 중세적 사상이 하루아침에 변화될 수는 없었고, 연극은 온전히 예술적 형태를 갖추기 이전에 도덕극(Morality Play)의 단계를 거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작자미상의 ‘에브리 맨'(Everyman)이 있는데 알레고리 기법이 두드러진다. 주인공 에브리맨은 어느 날 ‘죽음’(Death)이라는 방문자를 만난다. 그는 에브리맨에게 창조자(Maker)를 만나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나자고 다그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의 알레고리이다. 에브리맨은 그 여행을 떠나기가 두렵다. 그래서 ‘우정’(Friendship), ‘부’(Riches) 등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죽음과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마지막 어두운 동굴 앞에 선다. 그리고 그곳까지 자신을 동행한 ‘선행’(Good Deeds)이라는 이름의 친구와 작별을 고한다. 죽음을 맞이한 인간은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을 때 베푼 선행만이 그 외로운 죽음의 길에 동행한다는 도덕적 교훈이 주제인 셈이다.
마침내 예술적 단계로 이전한 연극은 이후 급속한 발전을 이룬다. 영어로 쓴 최초의 희극은 우달(Nicholas Udall)의 '랄프 로이스터 도이스터‘(Ralph Roister Doister, 1556)였다. 우달은 이튼 학교의 교장으로 교육적 목적을 위해 직접 희곡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스티븐슨(William Stevenson)의 희극 ‘감마 거튼의 바늘’(Gammer Gurton's Needle, 1562)이 발표되었고, 비극으로는 왕권을 두고 벌이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그린 ‘고보덕’(Gorboduc)이 색빌(Thomas Sackville)과 노턴(Thomas Norton)의 공저로 1560년에 초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576년 제임스 버비지(James Burbage)는 그의 극단을 위해 런던 교외에 ‘더 시어터’(The Theatre)라는 이름의 극장을 세운다. 1599년에는 템즈 강변 쪽에 ‘더 글로브’(The Globe) 극장이 세워지는데 이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주요 작품들 대부분이 공연되었다. 이 밖에도 ‘더 로즈’(The Rose), ‘더 포춘’(The Fortune) ‘더 스원’(The Swan) 등 다수의 연극 공연장이 건립되었다. 더불어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존 릴리(John Lyly), 토머스 키드(Thomas Kyd),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등 새로운 극작가들이 등장함으로써 영국의 연극은 발전을 거듭한다. 특히 이들의 동시대 작가인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는 셰익스피어에 비견될 만큼 훌륭한 문재를 지닌 작가였지만 서른의 나이를 채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그의 ‘탬벌레인’(Tamburlaine)이라는 작품은 진정한 의미에서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의 시작이었으며, 셰익스피어가 아직 작가로서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시기에 ‘파우스트’(Faust), ‘말타의 유태인’(The Jew of Malta) 등의 걸출한 작품을 발표하여 당시의 연극적 분위기에 부응하였다. 한편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필가 벤 존슨(Ben Jonson)은 셰익스피어나 이후의 극작가들과는 뚜렷이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당시의 낭만적 경향에 반발하여 그리스 로마 극의 고전적 원리를 주창하였다. 예를 들어 그의 작품들은 고전주의 연극론 중의 하나인 ‘3일 치’(시간, 장소, 구성: 한 장소에서 하루 안에 일어난 단 하나의 사건) 원칙을 지키려 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연극적 발전, 선배 극작가들의 노력 속에 등장하여 엘리자베스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