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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시대의 시인들

필립 시드니와 에드먼드 스펜서

by 최용훈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대표적인 시인들로는 필립 시드니(Sir Philip Sidney)와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cer)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정형시라 할 수 있는 ‘소네트’ 양식의 14 행으로 이루어진 시가 유행했는데 두 시인도 이태리의 영향을 받은 ‘페트라르칸 소네트’(Petrarchan Sonnet) 형식의 소네트 모음집 ‘아스트로펠과 스텔라’(Astrophel and Stella), ‘아모레티’(Amoretti)를 각각 내기도 하였다. 이태리 형식은 8행(octave)과 6행(sestet)으로 구성되어 각운(rhyme)을 맞추고 있다. 한편 셰익스피어의 ‘소네트’(Sonnets)는 이태리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국적 양식으로 발전하는데 세 개의 사행(quatrain)과 하나의 2행(couplet)으로 각운을 이룬다.

필립 시드니는 그의 삶과 문학에 있어 전형적인 르네상스인 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예술론을 승계한 그는 영국 문학사 최초로 문학에 대한 짧은 단상을 쓰기도 하였다. 당대 최고의 산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수필(시의 옹호: The Defence of Poesy)에서 ‘시인은 고귀한 신분’을 지니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문학의 위대함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문학이 역사와 철학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문학은 역사만큼 구체적이며 철학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Literature is as concrete as history, and as universal as philosophy. 다시 말해 역사는 구체적이지만 보편적이지 못하고, 철학은 보편적이지만 구체적이지 못함을 지적하여 문학의 구체성과 보편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또한 ‘문학은 자연의 모방이지만 상상력을 통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을 다시 주장하고 있다. 그의 수필에는 문학의 유용성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도 언급되고 있다. 즉 문학은 즐거움을 통해 인간을 교화함으로써 개인과 사회 모두에 유용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1595년에 쓴 그의 ‘시의 옹호’ 중 일부이다.

그런 고로 철학자와 역사가의 경우 전자는 교훈으로 후자는 사례를 통해 그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지만 둘 모두 하나만으로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철학자는 주장도 빈약하고 규칙도 없이 주저앉아 웅얼거릴 뿐이고, 그의 웅얼거림은 너무 막연하여 이해할 수조차 없어서, 자신 외에는 이끌어 줄 사람조차 없는 그는 늙을 때까지 애만 쓰다가 결국 정직해져야 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의 지식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에 세워져 있어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행복하겠고 그 이해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행복할 것이다. 반면, 역사가는 교훈을 가지지 못한 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것 즉, 특정한 상황의 진실에만 매어져 있어 그가 제시하는 사례는 필요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따라서 그 원리도 생산적이지 못하다. 이제 비할 때 없이 훌륭한 시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데, 철학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가를 완벽하게 보여주어 일반적인 개념에 구체적인 사례를 결합하는 것이다.” (5)

다소 어려운 문체로 된 이 글에서 필립 시드니는 시에 대한 당대의 비난에 대항에 시의 위대성과 시인의 우수성을 찬양하였다. 영문학 사상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의 효용성에 대한 첫 번째 비평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드니 경은 고대 사회에서 시인이 차지했던 높은 지위를 강조하면서 시는 상상력을 통해 이상적인 제2의 자연을 제시하여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문학을 철학이나 역사와 비교하면서 즐거움을 통해 인간을 교화하는 시(문학)야말로 철학처럼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처럼 구체적이기도 한, 보다 높은 차원의 것임을 강조하였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모든 추상적인 개념들과 마찬가지로 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학이 인간과 인간의 삶을 다루는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인 희곡들의 주제는 오늘의 문학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허구의 세계를 비행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을 가장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귀중한 자원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Borges)는 과학이 육체의 확장인 반면 문학은 마음의 확장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확장된 마음과 상상력이 오늘의 과학 시대를 열었으며 오늘의 문명과 문화를 이룩했음에 비추어 볼 때 문학을 통한 상상력의 확대야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능력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다양한 매체 속에서 문학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은 인류의 재앙이다. 한 권의 시집으로 마음의 짐을 벗고 한 권의 소설로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문학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초라할까 아니 얼마나 퇴보하고 말 것인가. 시드니 경은 문학의 위대한 힘에 대한 예언을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 가장 뛰어난 영국 시인으로 알려지고 있는 에드먼드 스펜서는 고양된 시적 상상력, 음악성 그리고 그림처럼 생생한 묘사로 유명하다. 중세 로망스의 구성에 기초한 그의 ‘페어리 퀸’(The Faerie Queen, 1598)은 알레고리 기법을 이용해 기사가 가져야 할 12가지의 미덕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아쉽게도 그중 6가지 ‘신성함, 자제, 순결, 우정, 정의, 예의’(Holiness, Temperance, Chastity, Friendship, Justice, Courtesy)만 완성되었고 ‘지조’(Constancy)는 미완으로 남겨졌다. 한편 한 해의 열두 달을 나타내는 12편의 전원시로 구성된 ‘목동의 달력’(Shepherd's Calendar, 1579)은 목동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 전원에서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으며 이 작품은 영국 최초의 전원시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서 이래 200년 만에 등장한 국민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음은 에드먼드 스펜서의 사랑에 대한 시이다.

어느 날 바닷가에 그녀 이름을 썼다네.

어느 날 바닷가에 그녀 이름 썼더니
파도가 밀려와 그 이름 쓸어가 버렸네.
다시 한번 그 이름 써 보았지만
물결이 밀려와 내 수고를 헛되게 하네.
그녀가 말하길 “어리석은 분, 헛되이
덧없는 걸 영원한 것으로 만들려 하시다니.
저 자신 그처럼 스러져 가고
제 이름 역시 그처럼 씻겨갈 거예요”

내가 말했지. “그렇지 않아요. 천한 것들 죽어
흙이 돼라 하고 그대 이름 빛나게 하리다.
나의 시가 그대의 귀한 미덕 영원케하여
그대의 빛나는 이름 하늘에 써놓으리다.
죽음이 온 세상 지배한다 해도

우리 사랑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살지니.” (6)

에드먼드 스펜서의 이 굳은 사랑의 맹서는 시를 통한 불멸의 삶을 노래한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던 그였기에 그는 시를 통해 영원한 사랑을 꿈꿀 자격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왕의 총애를 그리워하고 그녀를 위한 시집 ‘페어리 퀸’을 쓰고도 관직을 얻지 못하자 말년을 실의 속에 살다가 죽은 그를 생각하면, 이 시 속의 그녀만큼은 진정 사랑했던 그의 여인이었기를 바란다. 굳은 사랑의 약속도, 사랑스럽던 그녀의 모습마저도 희미한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가는 건 세월의 파도, 세월의 물결이 쓸고 가버렸기 때문일까?


English Texts:


From The Defence of Poesey by Philip Sidney

The Philosopher therefore, and the Historian, are they which would win the goal, the one by precept, the other by example: but both, not having both, do both halt. For the Philosopher setting down with thorny arguments, the bare rule, is so hard of utterance, and so misty to be conceived, that one that has no other guide but him, shall wade in him till he be old, before he shall find sufficient cause to be honest. For his knowledge stands so upon the abstract and general, that happy is that man who may understand him, and more happy, that can apply what he does understand. On the other side, the Historian wanting the precept, is so tied, not to what should be, but to what is, to the particular truth of things, that his example draws no necessary consequence, and therefore a less fruitful doctrine. Now does the peerless Poet performs both, for whatsoever the Philosopher said should be done, he gives a perfect picture of it by some one, by whom he presupposed it was done, so as he couples the general notion with the particular example. (5)

One day I wrote her name upon the strand
by Edmund Spencer

One day I wrote her name upon the strand,
But came the waves and washed it away:
Again I wrote it with a second hand,
But came the tide, and made my pains his prey.
“Vain man”, said she, “that dost in vain as say
A mortal thing so to immortalize!
For I myself shall like to this decay,
And eek my name be wiped out likewise”.
“Not so”, quoth I, “let baser things devise
To die in dust, but you shall live by fame:

My verse your virtues rare shall eternize,
And in the heavens write your glorious name;
Where, whenas death shall all the world subdue,
Our love shall live, and later life renew”.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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