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초여름
초여름의 더위는 그래도 견딜만하다. 아직은 덜 습하고 무엇보다도 초록이 아직은 봄기운을 머금고 있어서인가 보다. 어느 시인이 오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리를 노래했듯이 나는 초여름의 초록이 좋다. 문득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다.
나는 초여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다. 그분은 너무도 고운 분이셨다. 초여름의 그날, 베이지색 레인코트를 입고 우산을 쓴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무렵이었던가. 어머니는 어디선가 얻은 미제 맥스웰 커피를 자그마한 식료품 가게에서 돈으로 바꾸셨다. 그리고 카스텔라 빵을 하나 얻어 내게 주셨다. 그렇게 어린 아들의 바람을 가슴으로 느끼셨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빵을 받아 든 내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의 초여름, 비 오는 날을 난 좋아한다.
어느 해 여름 한가운데 어머니는 여동생의 집을 찾으셨다가 쓰러지셨다.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두 주를 누워계시다가 그렇게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서 나는 속으로 울었다. 누워 계신 어머니께 나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어머니는 초여름의 환한 햇살 속에 건강한 모습으로 계셨고, 난 그 아름다운 날에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돌이켜 보면 긴 세월 별다른 추억도 없는 것 같다. 기억의 조각들을 아무리 끌어 모아도 뿌연 안갯속을 서성일뿐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어느 여자아이의 얼굴조차 희미한 지금, 난 아직도 무얼 찾고 있는 건지. 예이츠가 말했듯이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무언가를 위해 끝없이 준비하는’ 것일 뿐일까? 아니, 그 무언가는 차라리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남겨진 소리, 남겨진 내음, 남겨진 사람이 그리운 나이에 무언가 일어나는 것이, 그래서 또다시 남겨질 무언가를 가슴 저리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
어머니. 그래서 살아 계실 때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 낡은 헌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메모 한 구절, 접힌 종이 하나 그리고 아련한 추억들... 그것들이 초여름 어느 날 내 가슴 한 구석에서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