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부조리의 발견

태양 때문에 살인한 뫼르소, 전쟁과 역병

by 최용훈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어린 시절 세상에 대한 절망과 반항의 시절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프랑스계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크리올(criole; 유럽인의 자손으로 식민지에서 태어난 사람)로 태어났다. 태어난 이듬해인 1914년 1차 대전에 참전했던 아버지가 전쟁에서 전사하고, 그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자였다. 낡은 셋집에서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지독한 가난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하녀였고, 장애인이었던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그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과 애정은 평생 동안 이어지는 그의 마음의 짐이었다.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지만 결핵에 걸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그는 이런저런 잡역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1935년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노스’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사 학위를 얻게 된다. 이 시기 그는 평생의 스승이 된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을 넘어 28년 간 235 통의 서신을 주고받은 지성과 문학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철학 에세이 ‘섬’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르니에는 그 책의 서문을 자신의 학생이었던 카뮈에게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처음 몇 줄을 읽다가 가슴에 꼭 껴안고... 나의 방까지 한 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될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진정 부러워한다.” (‘섬’의 서문 중에서)


크리올로서의 정체성과 경험은 카뮈의 사상과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프롤레타리아의 삶, 혁명적 지식인 모임에의 참여, 철학에 대한 관심 등을 지니고 그는 1938년 25세가 되던 해 프랑스에 도착한다. 그렇게 카뮈와 시대가 조우한다. 1941년, 그는 ‘이방인’과 ‘시지프스의 신화’를 발표하여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944년과 1945년에는 희곡 ‘오해’와 ‘칼리귤라’를 발표한다. 나치 점령 시절에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전투’라는 신문에 정치 칼럼을 연재하였는데, 1945년에는 연합군의 히로시마 원폭을 비난하는 글을 싣기도 하였다. 1947년 카뮈는 정치적 저널리즘과 결별한다. 그리고 그 해 전쟁을 역병에 비유한 그의 소설 ‘페스트’를 발표한다. 이후 카뮈는 소설과 철학 에세이를 쓰는 외에도 연극 연출과 희곡 작업에 몰두한다. 1948년 그의 희곡 ‘계엄령’이 연출가 장 루이 바로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지고, 1949년에 ‘정의의 사람들’이 발표된다. 이후에는 라리베의 ‘정령’, 칼데론의 ‘십자가에의 예배’,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윌리엄 포크너의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 등을 각색, 번안하였다. 연극에 대한 그의 애정은 알제리 시절인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운영되었던 극단 ‘노동자의 극장'의 설립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시지포스의 신화’는 카뮈의 ‘부조리’ 개념에 대한 선언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지성들은 ‘참을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에 절망한다. 그리고 2,000여 년을 지켜왔던,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Essence precedes existence.)라는 기독교적 명제를 포기한다. 그리고 무(無, nothingness)의 세계 속에 ‘던져진 존재’(thrown-out being)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며 과거의 명제를 뒤집는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essence). 인간은 신의 의해 규정되었던 자신의 본질을 상실한다. 그렇게 우주 속에 딛고 설 발판을 잃어버린다. 우주를 부동하는 인간은 ‘불안감’(angst, anxiety)에 빠진 채 과거의 본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것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와 같이 결코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죄에 대한 벌로 끊임없이 바위를 언덕 위로 올렸다가 다시 아래로 굴리는 시지포스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모습은 그 얼마나 부조리한가! 철학 에세이집 ‘시지포스의 신화’는 삶의 부조리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서 철학적 자살, 부조리한 인간상, 철학과 소설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문학적 사례로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악령’에 등장하는 키릴로프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소위 논리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간이다. 삶이 가치가 있으려면 신이 필요한데, 그는 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신의 부재는 삶의 가치를 파괴하고 결국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실존주의 철학과 부조리 문학에 많은 영감을 던져주고 있었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존재할 가치가 없는 벌레 같은 인간은 죽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자신의 인생도 파괴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가학적인 행위들은 결국 현실과 괴리된 부조리의 세상을 암시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조리한 인간상은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뫼르소라는 주인공으로 이전한다.


카뮈로 대표되는 부조리 문학의 시작을 알린 것이 1942년 발표된 ‘이방인’(L’Étranger)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삶의 현실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고립된 ‘이방인’이 된다. 그렇게 고립된 부조리한 세상에서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그 이유를 “태양이 눈부셔서”라고 말한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도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튿날 여자와 희극영화를 본다. 그리고 애인의 버릇을 고치겠다는 이웃 친구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친구와 구원이 있던 아랍인들과 부딪히고 그중 한 사람에게 다섯 발의 총을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그에게 신부가 찾아와 죄의 고백을 요구하자 그는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며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증오 속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뫼르소의 이러한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국 설명할 수 없는 내적 갈등과 열망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한 인간의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카뮈는 네 가지 상황에서 인간은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첫째, 시간의 흐름과 함께 파괴되는 모든 것. 둘째, 기계적인 일상의 반복, 셋째, 군중 속에서의 소외감, 넷째 타인과의 소통 부재. 결국 현대인의 삶은 지속적인 부조리의 세계에 함몰되고, 결국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카뮈의 또 다른 문제작은 전쟁과 역병을 동일시한 ‘페스트’라는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카뮈는 인간의 삶과 존재의 의미가 너무도 쉽게 파괴되어 버리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떠올린다. 하늘의 형벌이라 불렸던 그 잔인한 역병으로 유럽 인구의 1/3이 사망한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있고, 썩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카뮈는 전쟁과 페스트 둘 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은밀하게 다가온다고 느낀다. ‘페스트’ 1부에서 페스트의 발병은 2차 대전의 발발과 비슷하게 전개된다. 역병에 따른 전기 공급의 제한은 전쟁 중 공습으로 인한 발전시설의 파괴를 암시하기도 한다.

‘페스트’가 퍼지게 되자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친구인 타루와 함께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페스트의 창궐에 대항한다. 전쟁 중 나치에 대항했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연상시킨다. 그 잔혹한 역병이 소설 속 신부의 설교대로 하늘의 징벌이라면 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 하는가가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다. 페스트에 감염된 어린아이의 가여운 죽음을 목도하면서 작품 속의 인물들은 그 부조리하고 가차 없는 하늘의 형벌을 저주한다. 신의 뜻을 믿었던 신부 역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하느님,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지 않습니까.” 기독교에 부정적이었던 카뮈의 종교관이 드러난다. 마치 역사학자 토인비의 독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신은 존재한다면, 전능하지 않고, 전능하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셰익스피어의 ‘잔인성의 비극’(tragedy of cruelty)에서 처럼, 리유의 친구 타루도, 신부도 그리고 죄 없는 많은 이들마저 죽고 나서야 질병은 잦아든다. 리유와 레이몽 랑베르라는 기자만이 살아남아 그 역병의 비극을 증언한다. 하지만 페스트의 종식은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소멸된 것이었다. 마치 모든 것을 태우고 연소되는 불꽃과도 같은 것이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리유의 깨달음과 함께 끝을 맺는다.


“시내에서 들려오는 환희와 외침 소리를 들으며,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환호하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거나 방이나 지하실, 트렁크나 손수건,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언젠가는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몰아넣어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언제나 예언적이다. 카뮈는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 존재와 세계의 부조리를 묘사하고 있지만 그의 사변적 인식은 현실 속의 우리 모습을 우화적으로 반영한다. 오늘날의 그 눈부신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들의 한계 속에서 언제나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카뮈도 자신의 죽음이 그렇게 부조리하게 다가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60년 1월 친구의 가족과 함께 타고 가던 자동차가 도로를 벗어나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참으로 역병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었던 죽음이었다. 그는 평소 "어린이의 죽음만큼 더 분노할 것은 없고,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것은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부조리한 세상을 발견한 한 사상가의 죽음은 그렇게 터무니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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