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길들이기, 길들여지기
생텍쥐페리 : 어린 왕자
B612라는 별에서 온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서 사랑했던 장미의 냉담함에 상심하여 이 별 저 별을 떠돌았다. 신하도 백성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힘과 권위만을 내세우던 왕의 별, 술 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는 술꾼의 별, 하늘에 보이는 무수한 별들이 모두 자기 것이라 주장하는 과대망상의 상인이 사는 별, 아주 작은 별에서 매 순간 아무 의미 없이 불을 켜고 끄는 이상한 사람의 별, 산과 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지리학자가 사는 별 : 그것은 무의미한 권력, 지독한 자기 합리화, 과대망상과 추한 소유욕,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헛된 일에 몰두하는 인간군상, 현실에 기초하지 않는 공상(空想)과도 같은 지식에 대한 풍자였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마지막 여행지 지구에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미 목도한 수많은 허위와 위선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타자(他者)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행기 조종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가 1943년 발표한 소설 ‘어린 왕자’(Le Petit Prince)는 전 세계 505 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된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동화 같은 작품이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구에 도착해 외로웠던 어린 왕자는 어느 날 사막여우를 만난다. 그리고 그로부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배운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이리 와 나하고 놀자. 난 정말로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안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까지 세상에 다른 수많은 아이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 없어. 너도 물론 내가 필요 없겠지. 나도 세상에 흔한 여러 여우들과 다를 게 없는 한 여우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될 거야.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테니. 나도 너한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구..."
길들이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론 길들여지는 것은 작품 속의 표현대로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긴다는 것”인지 모른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어떤 때에는 상대로 인해 고통을 감수해야 할 일이 있기도 할 테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당신은 서로에게 길들여진 진정한 친구일지도 모른다. 여우가 시킨 대로 장미 꽃밭에 간 어린 왕자는 그곳에 무수히 피어난 장미꽃들을 보며 자기의 별에서 사랑했던 바로 그 장미를 떠올리며 말한다.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 덮개를 씌워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은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야.”
나의 장미꽃! 내가 물을 주고, 공을 들인 바로 그 꽃. 그렇게 관계를 맺고 길들인 대상. 그것이 진정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러나 넌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을 지는 거야. 넌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
얼마나 놀라운 통찰인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만난다. 그리고 그와 관계를 맺고 서로 길들여진다. 그럼으로써 서로는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그에게 들인 시간, 그 노력 때문에. 그리고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