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자비에 굴복한 정의
셰익스피어 : 베니스의 상인
유대인의 역사는 고난과 박해의 역사였다. 고대 이집트의 노예로 살다가 모세에 의해 해방되었지만 유대인들의 땅은 또 다른 고대의 제국 로마의 속주가 된다. 다시 로마에 항거해 일어섰으나 거대한 제국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디아스포라! 그들은 고향을 등지고 2,000년의 세월을 조국 없이 떠돌게 된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나치 독일에 의해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갔다.
유럽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수난은 그들의 종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미 로마 제국 이래 기독교화되었던 유럽인들은 구약 성서를 공유하였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교인들을 이교도로 경멸하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타국을 헤매던 그들은 생존을 위해 물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고 그런 그들에 대해 유럽인들은 혐오의 감정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백인들의 문학 속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모습은 교활하고 비열한 모습으로 그려지게 된다. 특히 서양문학 속에서 유대인들은 수전노나 사악한 악인으로 등장한다.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의 ‘말타의 유대인’(The Jew of Malta)에 등장하는 유대인 ‘바라바스’가 그랬고,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 ‘올리버 트위스’(Oliver Twist)에 등장하는 인색한 유대인 악당 ‘패긴’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문학 속 유대인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Shylock) 일 것이다.
샤일록은 친구를 돕기 위해 급히 돈이 필요했던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에게 급전을 빌려주면서 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그의 몸에서 살 일 파운드를 떼어내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것은 늘 자신을 비웃고 조롱했던 기독교인 안토니오에 대한 복수심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결국 조건을 수락하고 돈을 빌린 안토니오가 약속한 날짜에 빚을 갚지 못하자 샤일록은 그의 살을 베어가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대인을 경멸했던 기독교인들의 비난을 향해 마음속에 쌓인 울분을 토로한다.
“유대인은 눈이 없소? 유대인은 손도, 오장육부도, 수족도 감각도, 감정도 격정도 없단 말이오? 기독교들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지 않고, 같은 무기에 다치지도 않으며, 같은 병에 걸리지도 않고, 같은 방법으로 치료되지도 않으며, 같은 겨울과 여름에 추워하고 더워하지도 않는단 말이오? 우리의 살은 찔러도 피가 나지 않고, 간질여도 웃지 않소? 독을 먹어도 죽지 않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복수하지 말아야 하는 거요? “
샤일록은 또한 자신의 행위가 계약에 따른 법의 정의에 부합함을 주장한다.
“여러분 가운데는 사들인 노예를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이 있겠죠. 마치 당나귀와 개와 노새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을 비참하고 비굴하게 부리고 있죠. 왜죠? 그들을 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죠. ‘그들을 놓아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결혼시키세요. 왜 그들이 힘든 짐을 지고 땀을 흘려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노예는 우리 것이다.’라고요. 그래서 저도 여러분께 대답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요구한 한 파운드의 살은 비싸게 산 것입니다. 그것은 제 것이에요. 난 그걸 가질 겁니다.”
작품의 결말은 현명한 여인 ‘포셔’(Portia)가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살을 떼어 가야 한다는 절묘한 판결을 내림으로써 샤일록의 주장을 무너뜨린다. 셰익스피어는 법의 정의가 기독교의 자비에 무릎을 꿇는 것을 그리려 했을지 모른다. 상대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잔혹한 계약의 준수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중요한 것임을 주장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과 자비의 미덕이 왜 유대인과 이교(異敎)에는 적용될 수 없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은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