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인간은 쓸쓸할 때가 제일 제정신 같아.
그래서 밤이 더 제정신 같아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제목 적어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그냥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 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윈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