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나를 보고 뜨겁게 눈시울을 붉혔다.
건강이 좋지 않아 올봄은 거진 집에만 누워 있었다. 병원도 수시로 들락거리고 입원도 하며 정말 생지옥을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오프 더 레코드로, 나는 처음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도 '중보기도'라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남에게 부담을 주는 일 같고 그런 요청을 하는 나 스스로가 좀 멋쩍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나브로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데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중보기도를 요청해 왔을 때 그 '용기'가 멋있다고 느껴지면서 내 마음도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 사람들에게 내 영육 간의 강건함에 대해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교회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은 교회에 나갈 수 없는 나를 대신하여 전화로 기도를 해주셨고 함께 큐티를 하는 동료들도 중보를 해주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었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며 가족들이며 친구들이며 참 큰 힘이 되었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고통이 사라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 가운데에서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힘들고 괴롭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조금 더 견딜 것을 격려해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과연 나를 또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참만에 출근하여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같은 회사 건물의 지체 한 분을 만났다. 짧게 근황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 때 그녀의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눈물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있었고 그 눈물에는 그 보혈로써 나를 살리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 넘쳐났다. 왜 저 때문에 우세요......라고 하다가 저를 위해 울어주셔서 감사합니다로 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험한 세상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내 주위에 서로 의지하고 기대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심어두셨다. 그분들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끙차! 나아가보련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