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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켈리 May 19. 2024

[ep.13]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데레이(3)

(2024/5/4) 결국 택시타고 점프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온 이유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의 삶에는 내가 없었다.

과거에 대한 후회만 가득차

미래는 안개 속에 가려져 희미했고

의미없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내 삶의 여정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아 저곳에 가서 생각좀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번뜩 들었다.


내가 몸이 편해서, 몸이 고생을 안해서

이렇게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루종일 걸으며 힘들땐 맥주 한잔

와인 한잔 마시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래 저곳에 가서 고생을 좀 하며

내 자신을 되돌아 보고

속세와 떨어져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멘탈 회복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성을 찾겠어!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거야!'


이렇게 거창한 마음을 먹고

가방에 카네기 행복론과 자기관리론

책 두권을 챙겨서 이곳에 왔는데

막상 걸어보니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온 신경이 걷는데 집중되어 있어서

무슨 내 자신을 찾고 되돌아보고 할

정신적 여유가 없다.


일어나면 바로 침낭 정리하고

씻고, 나갈 채비해서 바로 나와서

걷고, 또 걷고, 또 걷고

숙소 도착하면 씻고

다음날 준비하고 쓰러지듯 자고


뭐 이러다 보니 딥한 생각은 못해도

머리 비우는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 난 이곳에 사서 고생을 하러 왔다.

내 배낭이 무겁고 다리가 아무리 아플지라도

감내하고 이 걸음을 이어 나가야 한다.

그럼 그 끝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거야!


그런데 반복되는 오르막 내리막길에

내 발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비가 그칠줄을 모르고 계속 온다.

일단 또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앞에 바르(Bar)가 보이길래 들어가서

코카콜라를 시켰다.


예전에 디즈니월드에서 일할 때

에스파뇰 쓰는 사람들이

코카콜라 시킬 때 꼬까꼬올~라

이렇게 말했던게 기억나서

나는 우노 꼬까꼬올~라

이렇게 주문을 했다.

힘들 때 마시는 코카콜라 with 레몬과 얼음. 환상적인 맛

그런데 바르 카운터 쪽에

택시 번호가 붙여져 있는게

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내면에서는 내적갈등이 시작됐다.

'택시를 타고 가?'

'안돼 그럴 순 없어!

어떻게 순례길 이튿날에 택시를 타?'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면 좋을텐데

무비스타 유심을 꽂은 내 핸드폰은

전화도 데이터도 터지지 않았고

갤럭시 워치를 보니

휴식시간 포함해 약 6시간 동안

15km를 이동해 왔고,

아마 10km 정도를 더 가야할텐데

지금의 내 걸음 속도라면

난 오늘 밝을 때 숙소에 도착하지

못할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택시 번호를 가리키며

택시 플리즈! 를 외쳤다.


그리고 친절한 서버분께서는

전화로 택시를 불러주셨고

난 무차스 그라시아스!를 외치고

택시에 탑승해 이동하는데

오늘 하루 날 지나쳐 앞서갔던

수많은 순례자들의 모습이

택시 창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포르토마린 숙소에서 출발한지

7시간 만에 팔라스 데 레이에 위치한

Albergue Meson de benito에

어찌저찌 무사히 도착을 했다.


내가 택시를 탄 Bar Trisquel에서부터

알베르게까지 택시로 15분 정도 걸렸고

택시비는 20유로가 나왔다.

택시 기사님은 택시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내 배낭을 직접 옮겨주셨고

굉장히 친절하셨다.


내가 탄 택시와, 팔라스 데 레이에서 묵은 숙소

순례길은 인생의 축소판 같다.

다 같은 속도로 걷는게 아니라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리고

누구는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어제는 느렸던 사람이 오늘은 빠르고

어제는 빨랐던 사람이 오늘은 쉬고

느린 사람이 택시 타고 먼저 도착하고

그런데 각자의 속도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다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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