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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켈리 May 19. 2024

[ep.12]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데레이(2)

(2024/5/4) 나는야 느림보 거북이

오아시스 같이 등장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무거운 배낭에 어깨가 짓눌린 탓에

입맛은 없어서 계란과 감자튀김을 남겼다.

(난 원래 평소에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다 먹었을 양의 음식. 남긴게 나조차도 놀라워서 사진을 찍어 놓았다.

오늘 묵을 숙소 빼고 나머지 숙소는

어제 다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마쳤는데

오늘 가는 팔라스 데 레이에

위치한 숙소는 비싼데만 방이 남아서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봤던

유튜버 '허송세월'님은 어디에서 묵었는지

영상을 다시 봐보니, 팔라스 데 레이에서

'Albergue Meson de benito'에서 묵었고

전화로 예약을 했었다.


부킹닷컴에서는 조회가 안되길래

밑져야 본전으로 어제 이곳 홈페이지에서

예약 신청을 해놨었는데 확정 메일이 와있다.

내 한몸 잘곳 없겠어? 라는 생각으로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것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리고 걷고 있었는데

확정 메일을 받으니 내심 안심이 되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판초를 고쳐 입고

출발을 하려는데

지나가던 어떤 젊은 남성 순례자분이

Do you need help? 라고 물어온다.

배낭을 멘 상태에서 판초를 혼자서 입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공감할텐데

판초가 가방에 걸려서 아무리 끌어당겨도

밑에까지 잘 안내려온다.

나는 It's covered right? 이라고 되물었고

그분이 내 판초를 끝까지 내려주신 후

It's covered now! 라고 하셨다.

나는 그라시아스! 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다시 걷는데

오르막길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내 입에서는 뭐야 또 오르막길이야?

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비에 젖은 흙바닥 위를 걷는 것은

평소처럼 그냥 앞을 보고 걷는게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을 위치를

생각하면서 걸어야 해서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걷기 너무 힘들다.

배낭은 무겁지

발바닥은 찌릿찌릿함과 동시에

통증에 불타오르고

발가락은 고통스러웠다.

등산스틱을 지팡이 삼아

절뚝거리며 걸었다.

나는 느림보 거북이가 되었다.


내 앞에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금발의 젊은 여성분이 있었다.

그분은 친구랑 같이 왔는데

앞서가던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그분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Oh my god!

이라고 했고 그분은 I'm good!

이라고 말하며 친구를 안심시켰다.

딱 봐도 힘들어 보였는데

괜찮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힘을 조금 더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괜찮다!!


아침을 먹은 곳에서부터

1시간 30분 가량 걸었는데

눈 앞에 카페가 보이길래

냅다 들어갔다.

그리고 오렌지 착즙 주스를 시켰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와 원동력은

오렌지 착즙 주스가 되어 있었다.

힘들 때마다 마음 속으로

'오렌지 착즙 주스!'를 외쳤다.


오렌지 착즙 주스와 흙탕물에 만신창이가 된 내 트레킹화

흙탕물을 걸어온터라

내 신발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산 새 신발인데

K2 매장에 들어가서 예쁘길래

산 신발인데, 너무 밝은색을 샀다.

어쩐지 사람들 신발이 대부분

어두운 색이더라.

이렇게 더러워질 줄 알았으면

나도 어두운 색을 골랐을텐데 말이지

그래도 고어텍스라서

신발 안에 비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다만 두 치수는 크게 샀어야 했나

한 치수 크게 샀더니 발가락이 아주

물집 잡히고 난리가 났다.


신발을 벗고

발가락에 콤피드를 붙이는데

내 앞 테이블에서 즐겁게 맥주를 마시던

할아버지들이 어디에선가 온 차를 타고

사라지셨다. 정말 부러웠다.

나도 태워달라고 하고 싶었다.


비는 계속 오지, 춥지, 발은 아프지

도저히 더 걸을 자신이 없었다.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일단 더 걸어보기로 했다.

이곳에 걸으러 왔는데

벌써 나약한 마음을 먹으면 안되지!


그렇게 걷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대만인 짱쭈리가 나타나서

Are you OK? 라고 물어본다.

절뚝거리며 걷는 내 모습이

힘들어 보였나 보다.

나는 I'm not okay 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힘들면 택시 타는 방법도 있다

다만 택시비가 좀 비쌀거라고 했다.


나는 짱쭈리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짱쭈리를 먼저 보낸 후

다시 느릿느릿한 걸음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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