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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05. 2020

그래도 그때는 나름 괜찮았어

삶이란 정말 덧없는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나는 생각이 늘 많은 아이였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한 가지 상황을 보더라도 여러 가지를 떠올리고 뭔가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올랐다.

아마 그 아이디어 같은 건 과학에서나 볼 수 있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닌, 한마디 문장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이 날 때마다 그런 순간들을 나는 즐겼다. 그래서 작가의 꿈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하교를 하고 난 이후에 침대에 가만히 누워 사색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럴 때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드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 생각이겠지만

'나는 왜 태어났고, 지구는 왜 있으며 , 나는 왜 존재할까?"

이런 생각들이었다.


사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생활을 유쾌하게 보내지만은 않았다. 반에서 왕따로도 몇 년을 고생했었고, 집은 반지하에 장애가 있는 동생이 있다 보니 남들에게 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움츠리는 경향이 있었고, 친구들을 집에 불러 노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 어린날의 기억들이 지금 떠오를 때마다 '그래도 그때는 나름대로 좋았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겪지 않았을 , 수업료 미납에 급식비 미납으로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가는 일도 나에게는 흔했었고 , 급식비 미납으로 인해 급식판에 밥을 먹을 때도 내가 먹어도 되는 걸까? 만약에 급식판이 모자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들로 점심시간이 즐겁지 않았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도 걱정을 하며 보냈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런 일들로 인해 삶을 마감해야지 라는 생각들이 들지는 않았었다. 나에게는 다정한 부모님이 계셨고 장애가 있는 동생 덕분에 나는 꼭 살아야만 했다.

나까지 잘못되면, 사고 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나는 그 누구보다도 예의 바르고 속 얘기를 잘 털어놓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는 애어른이 되었다. 죽는다는 것조차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고 혼자서 자취를 하게 되는 날들이 생겼는데, 그 해에 나에게 우울증이 왔었다.

전과는 다르게 집에 들어가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다 보니 나는 늘 혼자였다.

밥을 차려먹는 일도, 집 청소를 하는 일도, 빨래를 하고 개는 일도 모든 게 다 내 차지였고 내가 해야만 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울었던 것 같다. 혼자 있다는 그런 생각들이 날 괴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게 되고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우울증은 아직 내 안에 남아있었다.

직장을 다니고, 친구 같은 동료들을 만나도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우울했었고 , 행복하지만 행복하지 않았었다. 그 시절에 나는 누군가 손으로 누르면 으깨지는 두부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그 안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였다.


그래서 중학생 때 했던 생각처럼 나는 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은 지금의 마음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잖아요. 태어나는 걸 전생에서 미리 알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당신은 꼭 태어나야만 했기 때문에 태어난 거예요 "라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아침부터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한 명의 사람이라도 더 위로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으로 한 명의 사람을 더 살리고 싶다.


요즘에는 워낙에 살기 힘든 시대인데 여기에 더하는 코로나 블루로 인해 삶 자체를 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명보다 일찍 가면 삶은 덧없고, 우리들의 삶은 어쩌면 무의미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바람이 부는 날에 날리는 낙엽과도 같은 존재라 한없이 약한 존재일 수 도 있다.

그러나 , 지금 힘들 수는 있어도 먼 미래에는 분명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미래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을 기억하며 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때는 나름 괜찮았어"라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의 삶을 비관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주었으면 한다.

지금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고 진짜 괜찮아질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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