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에 남겨진 글

17화 보잘것없는 사람

by 고용환

아버지는 홀로 쓸쓸히 돌아가신 것이었다. 요양병원에서 암센터로 다시 입원하고 나서 보호자가 상주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가족들과 상의 후 간병인을 고용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둘 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하루 종일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일이 끝나면 거의 매일 병원에 방문해 아버지를 보고 왔는데 하필 그날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어머니도 병원 방문을 못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위급하신 거 같다는 간병인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와 동생은 다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날 왠지 병원에 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일을 나간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간병인에게 물어봤는데 아무런 말씀도 없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가난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가족에게 그 누구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도 아버지 스스로 만든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어떤 말이라도 남길 것이라 기대를 했던 거 같다. 이유는 마지막 수술을 마치고 우리가 본 아버지에 노트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남긴 문장만 있었다.

“○○사장, 나를 알아봐 줘서 정말 고마웠네.”

“○○친구, 같이 시간을 보내줘서 행복.”

“나를 위로해 줘서 감사합니다.”


문장들이 질서없이 노트에 채워져 있었다. 간호사에게 노트를 전달받고 최소한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노트에 남겨진 것은 예상과 달랐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인정해 주고 가치를 알아봐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만 적혀있었다. 그 노트를 보고 어머니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작은 기대를 했던 거 같다. 30년 넘는 세월을 싫든 좋든 함께 한 동지인데 한마디도 남기지 않음에 서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이해가 되었다. 그토록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한 남자였던 것이다.


15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 또한 그 인정에 메말랐던 순간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으며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그 반복적인 과정에 노예처럼 매일을 즐겁게 일했다. 주변을 둘러볼 시간도 없이 오로지 윗사람과 직장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주변 상황과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나의 명성도 차츰 꺼져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란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사람을 참으로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인정받는 순간에는 대단함에 대해서 가족에게 증명해 보이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게 되지만, 본인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에는 그런 서러움에 대하여 가족으로부터 가장 먼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금껏 잘해 왔으니 아직 늦지 않았다고 우리는 당신을 믿는다는 그 말 한마디가 힘이 되어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런 것에 있어서 누구보다 목마름을 느꼈을 것이다. 항상 사람 본연의 가치를 무시하고 돈 버는 능력만을 가지고 아버지의 역할을 판단하는 냉혈 인간 같은 자식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한번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아 돌아오기 위해 분명 노력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노력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우리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 어떤 말 하나 남기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가장 아버지다운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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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글은 책 <보잘것없는 사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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