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수술 후 아버지는 한동안 집에 주로 있었지만 몸 상태가 호전되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친구를 만나 경마장에 다시 가는 듯했다. 우리는 매번 픽업을 오는 친구분을 싫어했다. 말기 암 환자를, 그것도 두 번이나 큰 수술을 받은 친구를 불러내 경마장에 데리고 가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친구분이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기에 말릴 수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본인이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 보였다.
며칠 후 친척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안부 전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받았는데 누나로부터 당황스러운 말을 전해 들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고벽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누나는 화내지 말라고 하면서 말을 꺼냈다.
“사실 작은 삼촌이 고모와 누나들에게 전화해서 돈을 달라고 했어. 처음엔 큰돈도 아니고 해서 드렸는데 그 후로 계속 전화해서 달라고 하셔서…. 혹시나 알고 있나 해서 연락했어.”
말문이 막혔다. 언제 돈을 빌렸는지 확인했더니 경마장을 갔던 날들이었다. 친척들에게 전화해서 돈을 빌려서까지 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친구 따라서 바람 쐬러 가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누나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아버지가 빌려 간 돈 나중에 다 드릴 테니 또 전화 오면 그냥 빌려주세요. 우리한테는 미안해서 그 말 못했나 보네….”
적은 돈을 빌리고 있었다. 10만 원, 20만 원…. 듣고 나니 마음이 쓰려 왔다. 그냥 달라고 솔직히 말했어도 드렸을 텐데… 아무리 지은 죄가 많다고 해도 참 안쓰러운 인생처럼 느껴졌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카페로 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의지했거나 가깝다고 느낀 친척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혹시 아버지가 돈 빌려달라고 한 적 있거나 최근에 빌려주신 거 있으면 말 좀 해 주세요.”
친척 중에 몇 분은 전화가 오기도 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한 곳에 전화해서 빌린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돈의 액수가 적어서가 아닌 빌려주신 분들이 이전에 아버지께 신세를 졌다면서 그냥 드린 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를 해 주셨다. 그런 말을 들으니 참 고마웠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과도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 친동생에게도 철저하게 그런 관계를 유지했다. 아버지를 통해서 배운 것도 있지만 인간관계에 돈이 섞이는 순간에 관계의 순수함은 무너진다. 빌리거나 빌려주는 행동을 멀리해야 한다. 돈을 빌린다는 것은 그만큼 예측 없이 돈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그 어려움도 예측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보면서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들이 내 속에 철저히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에 정말 친한 사이라서 어렵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는데 거절당하면 그들의 사이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