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거든 난 여기에 있고 싶다.

14화 보잘것없는사람 - 산소의 추억들

by 고용환

<매거진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2시간이 조금 지나 우리는 산소에 도착했다. 옛날에는 산 밑에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지만, 주변에 밭농사로 인해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생겨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밑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가자고 하였다. 옛 추억을 떠올리고 싶은 거처럼 보였다. 우리는 산소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옆에 있는 논을 계속 바라봤다. 나 또한 이곳에 많은 추억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추석에 산소를 방문하고 내려오는 길에 논에 있는 올챙이 알을 발견하고는 생긴 게 너무 신기해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를 졸라서 그 알을 가져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아빠가 와서 괜찮다며 논에 들어가서 커다란 올챙이 알을 통째로 봉지에 담아 줬다. 엄마는 옆에서 알이 부화해서 올챙이가 되면 어디에 둘 거냐고 투덜거렸다. 나는 수백 마리의 올챙이를 상상하며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 한구석에 작은 어항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 올챙이들이 태어났다. 학교를 마치면 올챙이를 보기 위해서 한걸음에 뛰어서 집까지 왔다. 중간에 많이 죽기도 했지만, 10마리가 개구리로 변신하기도 했다. 나의 성장만큼이나 올챙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이 그 시절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자기 방식대로 많은 부분을 노력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여러 가지를 사준 적이 있는데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몇 개 있다.

고용환 / 보잘것없는사람

첫 번째는 현미경이었다. 장난감이 아닌 비싼 진짜 현미경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현미경 사용법을 배우고 틈나는 대로 무엇이든 넣어서 확대해 보았다. 물론 과학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호기심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고 친구들이 집에 올 때면 매번 자랑을 했다.


두 번째는 고성능 쌍안경이었다. 이것도 여행 전문가가 사용할 만큼 비싼 것이었다. 쌍안경을 선물 받고 나서 옥상에 올라가는 일이 많아졌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저 멀리 있는 건물이나 달도 정말 크게 볼 수 있었다. 한동안 어디를 가나 쌍안경을 들고 다니면서 작은 눈으로 큰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 나갔다.



한참 동안 산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아버지는 내려오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별로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감상하듯이 주변을 돌아다녔다. 오히려 시끄럽게 떠든 것은 같이 온 우리였다. 처음에는 그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가자고 하는 줄 알았다. 나였어도 죽기 전에 부모님을 뵙고 싶을 거 같았다. 그런데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죽을 자리를 보러 온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죽으면 여기에 있고 싶다.”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 표정과 눈빛에서 그 말이 진심이었음이 느껴졌다.


할머니 산소를 다녀오고 나서 아버지는 왠지 차분하게 본인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본인이 아끼는 낚시용품이나 옷들을 지인들에게 주기 위해서 내 차를 타고 몇 군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할머니 근처에 잠들고 싶다고 말한 것이 유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지라도 아버지의 바람대로 할머니 옆에 편안히 묻어 드리기로 결심했다.



본문의 내용은 책, <보잘것없는 사람>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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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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