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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y 19. 2021

#5. 37kg 몸무게

놓쳐 버린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입원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퇴원하면 바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셨다. 선생님은 회복 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당장 수입이 없어지는 것을 더 걱정했다. 

병원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퇴원하고 집에서 보니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딸이라도 하나 낳았으면 지금 더 위로가 되셨을 텐데 무뚝뚝한 아들 두 놈은 그저 속으로만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동생이 나보다 어머니에게 스킨십을 잘해드려서 항상 다행이었다. 퇴원하고 두 달쯤 지나서 어머니는 정년까지 1년도 안 남았고, 국민연금도 받으려면 10년을 채워야 한다며 다시 출근을 하셨다. 

집에서 홀로 멍하게 있는 것보다 몸도 움직이고 동료들도 만나는 게 더 식욕도 생기고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몸도 아픈데 일하는 게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지방에 살고 있어서 자주 찾아뵙기도 힘든 게 현실이었다. 이럴 때마다 군인이라는 직업이 버거웠다. 가까운 곳에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며, 걱정되는 마음을 전화로 대신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말은 엄마 걱정을 한다고 했지만 바쁜 일상에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언제나처럼 잘하고 계시겠지라고 여기며 몇 달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몇 달 만에 겨우 시간이 나서 서울에 올라갔다. 아내는 출산 후 장거리 운전으로 서울에 가는 것을 불편해했다. 특히나 남에 집에서 자는 걸 불편해했기에 아이가 태어나고 왕래는 더 소홀해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하는 손녀딸을 데리고 갈 수 없었다. 뭐하나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삶이 참으로 답답했지만 그냥 넘기고 살수 밖에 없었다. 넘기지 않으면 분명 걸려 넘어지게 되어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도착한 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가 너무 말라 있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동생에게 이게 뭐냐고 다그쳤다. 동생은 서운한 듯한 표정을 비추며 나를 그냥 바라봤다.

아마 매일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매일 엄마 얼굴을 보다 보니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거 같았다.


몰라 보게 야윈 모습이 걱정돼서 서둘러 병원에 모시고 갔다. 진료를 위해 체중계 위에 선 엄마의 몸무게는 40kg 미만이었다. 정확히는 37kg이었다.

선생님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영양제 처방과 함께 밥을 챙겨 드실 것을 각별히 당부하셨다. 당시 엄마는 남편을 잃은 상실감, 투병 생활, 다가오는 은퇴로 인한 경제적 부담감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무게감 때문에 그나마 먹는 음식도 모두 녹아 없어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기에 옆에서 지켜봐 드렸어야만 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방치된 시간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고통의 시간을 앞당겼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너무 쉽게 생각해 버렸다. 소화 기능도 떨어지고, 입맛도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다. 항상 괜찮다고 했던 그 말을 뻔한 거짓말을 철없는 믿은 못난 아들이었다. 

나는 지방으로 내려가기 전에 비싼 영양제와 고단백질 보조 식품을 사서 식탁 위에 올려두고 제발 잘 챙겨 먹으라고 애원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마치 어릴 적 밥 좀 많이 먹으로라고 속상한 얼굴로 야단치던 엄마처럼 나도 엄마에게 야단이라도 쳐야만 했다. 


참으로 이기적인 것은 내 딸이 태어나고 아픈 어머니보다 태어난 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더 걱정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소름 끼치게 이기적이었다. 나를 낳아 준 엄마가 아픈데 못난 자식 놈은 자기 딸 걱정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한심스러웠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위암 #몸무게 #어머니 #에세이 #보잘것없는사람 #가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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