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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y 14. 2021

#4. 어머니의 암 수술

언제나 자신보다 자식걱정을 하는 어머니


 입원하기 전날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소곱창을 먹으러 갔다.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니 소곱창을 먹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곱창을 좋아하는지 그때까지 몰랐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곱창 먹으러 자주 갔는데 단순히 거래처라서 가는 줄만 알았다. 어머니는 담담한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많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옛 추억을 친구 삼아 수술의 무서움을 달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최대한 밝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자식들 앞에서 걱정하지 말라며 주변 친구들도 암 수술했는데 잘 살고 있다고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곱창을 앞에 두고 어머니는 식사를 제대로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두 아들이 먹는 모습으로 대신했다. 자기 때문에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태연한척 했지만 뱃속에 들어가도 소화되지 않을 곱창에 불과했다. 


집으로 돌아와 입원에 물건을 샀다. 간소하게 짐을 싸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더 아려왔다. 

다음 날 병원으로 가는 차속에도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원 수속을 진행하고 여러 검사를 위해 병원 이곳저곳을 같이 다녔다. 아무리 초기 암이라고 해도 긴장감과 두려움은 우리 모두를 위축시켰다. 수술 전 최종 검사를 마치고 의사 선생님 면담을 했다. 

위 대부분을 절제하기 때문에 수술 후에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어머니는 씩씩한 척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저녁이 돼서야 어머니와 단둘이 병실에 시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엄마 모르게 병원비와 수술비를 알아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풍요로웠던 적 없는 우리였기에 큰돈이 들어가면 언제나 신경은 예민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든든한 직장이 있고, 무리해서 20대에 겁도 없이 사둔 아파트가 있어 나름 든든했다. 그럼에도 나쁜 일에 돈은 민감한 골칫거리였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고 우리는 당황했었다. 엄마가 그 옛날 들어두었던 보험들은 숫자가 꽤 되었지만 보장금액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고작 150만 원을 수술비로 주는 보험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실비가 있었기에 우리는 버틸 수 있었다. 추가적인 비용이 들 때마다 나는 엄마 걱정을 덜기 위해 내 돈을 썼다. 

몇 번이나 조금이라도 돈을 주려고 엄마는 애썼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어머니는 아빠에 고생한 나를 보고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아빠가 병원 신세를 지는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험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암 수술비로 얼마나 보장이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음날 보험 회사 직원과 통화를 하고 보장 금액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엄마는 신세를 지지 않게 된 것에 안도했다. 어머니는 수술이 잘 되면 보험금으로 치료비를 해결하고, 남는 돈은 50살이 넘어 큰 아들의 권유로 산 신축빌라의 대출금을 상환하고 싶다고 했다. 매달 이자 중 절반 이상은 내가 지불하고 있었기에 언제나 미안해했던 어머니였다. 

수술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돈 걱정과 자식들 걱정을 하는 엄마를 보고 제발 몸 생각만 하라고 애원했다


수술 당일 동생과 함께 어머니 곁을 지켰다. 벌써 몇 번째 보는 장면인지 모를 만큼 익숙했다. 약간은 겁에 질린 얼굴로 애써 손짓을 하며 수술방으로 엄마는 사라졌다. 나와 동생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말없이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드라마 속에 나쁜 결말이 우리에게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한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나이 먹고 몸까지 아프게 되는 삶은 정말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이럴 때는 그 어떤 신도 믿지 않고 무교로 있는 나 자신이 차라리 낳아 보였다. 누군가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면 분명 이 순간에 그 사람이 미웠을 것이었다.

적어도 잠시 숨 쉴 틈은 줘야 하는데 하늘은 인색했다. 동생과 앉아서 수술이 잘 끝나기를 한없이 기다렸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어머니가 병실로 돌아왔다. 정신이 조금 없어 보였지만 모습은 괜찮아 보이셨다. 

항상 씩씩했던 어머니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왜소하고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나 터프한 분인지 

우리 형제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따뜻하고, 누구보다 잘 버티는 그런 여자이자, 엄마였다.


삶이라는 건 참으로 어럽다. 어릴 때  아주 작은 시련에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다고 느낀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모든 일이 쉬워지고 뜻대로 다 될 거 같다는 착각을 하며 산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시련의 크기도 커진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시련들은 나중에 진정한 성인 되었을 때 우리가 더 큰 시련에 견딜 수 있도록 일부로 생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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