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May 26. 2021

#6. 엄마, 혹시 우울증 아니야??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느덧 어머니 수술을 한 지 4년이 흘렀다. 가끔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수술 후 별다른 합병증이 없었는데 언제나 많이 지쳐 보였다. 무엇보다 이전보다 말수도 줄었고 잘 웃지도 않으셨다. 최근에 집에만 계시다 보니 삶이 단조로워서 그런 줄로만 생각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극장에 갔다. 예전에 시간만 나면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어머니는 영화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두 아들 손을 잡고 데이트하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 제목을 몇 번이나 되묻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면 동료들에게 항상 자랑을 했다.


“어제 아들놈들이 또 극장에 가자고 해서 요즘 그 최신 영화 거시기 있잖아…. 그거 보고 왔지. 

안 봤으면 한번 봐봐. 너무 재미있더라....”


자랑할 것이 얼마나 없으면 부끄럽게 그런 자랑을 할까 생각을 했지만, 본인이 행복하다면 최신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모시고 갈 수 있었다. 그날도 개봉작 중에 시간에 맞는 영화가 슬픈 영화뿐이라서 어쩔 수 없이 보기로 했다. 푹신한 영화관 의자 앉아 평소처럼 경쟁하듯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


“하하하, 저게 뭐야.”


그런데 영화 중반부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서 어머니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했다. 

우리 형제는 당황해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해요, 여기 극장이야. 갑자기 왜 그래?”     


그리고 엄마는 남들은 슬퍼서 울고 있는 순간에도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엄마는 계속 슬픈 장면에서 웃었다. 특히 주인공이 빰을 맞거나 하면 더 큰 소리로 웃었다. 나는 불길함을 직감했다. 잠시 잠잠했던 이 지독한 인생 팔자를 역시 가만히 두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날 밤 동생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 왜 그러시냐? 뭔가 이상한데…….”


동생은 최근에 드라마를 볼 때 많이 웃기는 했는데 그냥 재미있어서 웃는 거로 생각했다고 했다. 괜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제외하면 어머니는 크게 이상한 행동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서울 집에 갈 일이 생기면 아내가 싫어해도 가족들을 데리고 올라갔다. 

물론 손녀딸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몇 번 방문하고 뭔가 이상함을 발견했다. 


평소라면 맛있는 음식을 해 주려고 장을 보고 기다렸던 엄마였다. 특히 내가 엄마표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해서 꼭 한 번은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는 아들의 모습을 항상 안타깝게 바라보던 엄마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냉장고가 텅텅 비어져 있었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최근 들어 요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무언가 이상했지만 ‘그냥 피곤해서 그러시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밥을 안 해 줘도 큰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되니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줄어든 말수와 삶에 대한 아무런 미련 없는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모시고 가는 것은 동생의 전담이 되었다. 직장과 거리도 있고 하는 일도 너무 바쁘다 보니 직접 신경을 쓰기가 힘들었다. 원래의 나라면 4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라도 돌봐 드렸을 테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내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 대신 병원 가는 날에 동생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내용을 전해 들었다. 다행히도 전이나 다른 합병증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은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어머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어리광 부리는 것 같아서 미웠지만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혼 후 얼마 안돼서 장기간 파견으로 서울 집에 머물었던 적 있다. 8개월 정도 함께 지내면서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 감정이 빠르게 나빠지는 것을 보았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 하루하루 오해만 쌓여 갔다. 

게다가 육아 방식에 차이까지 있어 어머니는 가족을, 가족은 어머니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나 또한 가족과 어머니 사이에서 저울질하느라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살면서 어머니께 육아 도움도 받고 아내도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더 나은 힐링의 시간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원한 교환 교관이라는 파견에서 얻은 것은 하나 없고 모든 상황은 독이 되어 돌아왔다. 그 시간을 통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동생은 아직 미혼이기에 미안하지만 잠시 그 무거운 짐을 떠넘길 수밖에 없었다. 겨우 동생을 진정시키고 왜 그런지 차분히 물어봤다. 동생 말로는 최근에 엄마가 새벽 4시까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자 웃는데 그것 때문에 잠도 못 잔다는 것이다. 잠자리가 예민한 동생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부탁을 해도 반복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는 것이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며칠 뒤에 서울 집으로 올라갔다. 도착하니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아니 차가웠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정신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저놈이 텔레비전을 못 보게 했다고 어린아이처럼 조르듯이 말을 했다. 그러면서 TV를 켜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리모컨으로 엄마가 원하는 채널을 그리곤 또 정신없이 웃었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걸으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엄마한테 좀 잘해. 집에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 얼마나 답답하겠어. 네가 좀 이해해라.”


그 말에 동생은 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본인도 웬만하면 넘어가는데 형도 같이 살아보면 어떤 심정인지 이해할 거라고 했다. 동생을 위로하며 모두가 지쳐서 그러니 곧 괜찮아질 거라고 달래줬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일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정말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아버지 관련해서 뭐가 날아왔는데 방금 돈을 내고 왔다고 했다. 나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무엇을 내고 왔냐고 물어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동생에게 전화해서 퇴근 후에 무슨 일인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 관련해서 모든 일을 다 처리했기에 더 이상 낼 것이 없었다. 저녁이 되자 동생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연체금에 대한 독촉장이었다. 상속 한정 승인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 부채에 대해서 상환할 의무는 없었다. 그런데 내용 증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에서 상환을 요구한 것이다.


예전에도 법무사를 통해서 내용 증명을 회사에 보내곤 했다. 어머니도 알고 계셨던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런 것들을 보면 가장 먼저 내게 알려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부채를 상환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머니 암 수술 이후에 받은 보험금으로 주택 담보 대출 원금을 상환하고 남은 일부를 생활비 하시라고 어머니 통장에 두었는데 가진 돈 모두를 보내 버린 것이었다. 최근에 무기력한 모습과 이상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분명 어머니가 어딘가 아프다는 것에 확신이 생겼다. 


며 칠 후 동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왔다. 나는 늦은 밤 아파트 단지를 걸으면서 진지하게 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아픈 것 같다.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

가 아닌 거 같아. 엄마가 극심한 우울증이나 치매가 시작된 거 같아.”


동생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치매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제 겨우 환갑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면서 동생은 믿기지 않는 듯 말했다. 하지만 냉정해야만 했다. 

그동안 넘겨짚었던 사소한 행동들의 퍼즐이 모두 맞춰지는 것 같았다. 


동생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부정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음을 실감하는 듯했다. 평생 엄마를 지켜본 입장에서 얼마 전부터 뭔가 달라진 것은 사실이었다. 더 이상 예전에 엄마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서둘러서 병원을 예약하기로 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지옥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극심한 우울증이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고 또 바랐다. 정신과 진료 예약은 생각보다 오래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 어릴 적 친구분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까지 어머니 증상이나 상태를 말씀드렸고, 한 번 집에 놀러 와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렸다. 제삼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자식들이 민감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받은 친구분은 안 그래도 최근 통화 연결이 잘되지 않아서 걱정했다고 하면서 친구들과 연락해서 곧 집에 가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위암 수술을 받을 때도 불쌍해서 미쳐버리는 줄만 알았다. 아버지가 아플 때와는 완벽하게 다른 감정들이었다. 내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표현 할 수 없는 무서움이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누군가 일부로 우리에게 벌을 주는 것만 같았다.


친구 두 분이 집에 방문하시고 그날 밤 전화를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각한 우울증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본인들 나이가 되면 우울증이 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빨리 모시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그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치매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오버였기 때문이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선생님을 만나서 진단받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좋아질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우울증 약만 처방받고 노력하면 다시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도 먹고, 고민도 털어놓으면 전화로 수다를 떨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저자의 첫 번째 책, 가족 에세이 링크입니다.>>>

이미지 출처 : google.co.kr

#우울증 #암투병 #치매증상 #엄마 #보잘것없는사람 #가족에세이 #미안해 #어머니


매거진의 이전글 #5. 37kg 몸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