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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n 01. 2021

#7. 꽃다운 나이 60세에 다가온 그늘

엄마, 모두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우울증 진단을 위해서 정신과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에 어머니는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모든 일을 귀찮아하고 코로나 19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해도 짜증만 내고 벗어버리곤 했다. 동생은 그런 엄마를 무척이나 답답해했다. 옆에서 지켜봐도 정상인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과금도 계속 연체돼서 결국 동생 통장에서 모두 자동 이체되도록 변경했다. 두 아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일은 사라졌다.


엄마는 오로지 OCN 채널 영화만 반복해서 시청할 뿐이었다. 그래도 유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겉모습은 행복해 보여서 마음 한구석이 편했다. 지금까지 웃을 일 별로 없던 인생이었다. 

아마 우리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해도 원망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운 없는 삶이었다. 

그래서 원 없이 웃기 위해 이런 병을 얻었나 싶었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선생님 앞에 앉았다. 최근 5년 사이에 의사를 만나는 일이 잦았다. 선생님은 증상을 판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어머니가 답변을 하기도 하고, 대답을 못하면 우리에게 물었다. 

위암 수술을 했던 병원이라서 수술 기록을 함께 상담이 이뤄졌다. 

선생님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추가적인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우울증은 아닌 거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위암 수술을 하고 체중이 급격하게 감소함에 따라 그때부터 뇌에 손상이 급격하게 진행된 거 같아요. 

원래 유전적으로 지병이 있었는데 수술로 뇌에 필요한 영양분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과속화된 것처럼 보이는데 세부적인 것은 MRI와 추가적인 치매 검사를 해 보시죠.”


우울증 약만 처방받으면 호전될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단호하게 진단하는 선생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재 상태만으로도 치매라고 이미 확진을 내린 것만 같았다. 이어서 옆방으로 이동해서 간단한 인지력 검사를 진행했다.


요일을 묻는 질문부터 날짜 그리고 더하기 등 기본적인 질문을 했다. 어머니는 바로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질문에 왜 답변을 해야 하는지, 본인이 왜 여기에 왔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진료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더 원망스러웠다. 살아있을 때도 자기만 생각하고 편하게 지냈는데, 지금도 가장 편한 곳에서 그저 바라만 보는 것 같았다. 모든 고통과 시련의 극복은 너희들의 몫이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인지 검사에서 정상이 아닌 산정 특례 적용 대상자 판정을 받았다. 간단한 검사만 하였지만 병원에서 중증 치매로 진단을 하였기에 병원비 일부를 감면받았다. 선생님은 추가적인 검사를 위해 임상 치매 척도(CDR)와 MRI 촬영도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 검사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어머니를 세부적으로 관찰했다. 아직은 가족들 이름도 다 기억하고, 많은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일들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더 많은 질문을 했지만, 어머니는 대답하는 것조차 귀찮은 듯 무관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행동이 확실히 달랐고 절제를 하거나 상황 판단을 잘하지 못했다. 분명히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일부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어린 딸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같이 사는 동생은 더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가끔 올라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나도 변해버린 어머니의 모습이 감당이 안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에서 치밀어 올랐다. 차리리 보지 않는 것이 속 편하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날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현실을 앞에 두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혼 전까지 항상 내가 잤던 방이었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눈을 감으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떠오르면서 숨쉬기 것조차 힘들어졌다. 

무슨 팔자가 이렇게 사나울까? 전생에 무슨 대역죄를 지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지금 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밀려오는 억울함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조용히 집을 나와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고만 치던 아버지 일을 수습했던 순간들, 아버지 간암으로 2년 간의 간호, 어머니의 암 선고 쉽지 않은 일들을 경험했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 빨리 치매를 맞이 할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당장 한 지붕 밑에서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동생은 의사의 치매 진단 이후 말수가 갑자기 없어졌다. 장남이라는 계급장을 앞세워 당당하게 내가 모시고 살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은 가슴에서 올라와 목구멍까지 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사회복지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캐나다 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단순하게 요양 시설에 모시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전화로 말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설득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지방에 살고 있어서 모시고 내려가면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들이 생길 것인 분명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진행속도가 빠르다면 곧 집을 못 찾거나 인지 능력이 상당히 나빠지게 될 것이기에 맞벌이를 하는 우리 집에 모시고 것은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오는 시련을 한 순간 압축해서 일찍 경험하는 거라고 걱정하지 말고 해왔던 것처럼 담담하게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고 그저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모든 일도 결국은 지나가고 나중에 추억 삼아 편하게 이야기하는 순간이 인생에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 2시간 넘게 불 꺼진 작은 골목길을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커버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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